The Cameraman, 1928
슬랩스틱이 있고, 마임이 있는, 하지만 대사는 없는 무성영화.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울고 갈 사실적인 표현이 감탄스럽다. 수많은 인파와 다양한 로케이션, 총과 칼이 부딪히는 치열한 장면까지, <카메라맨>은 1928년의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 완벽한 이 영화에 딱 하나 빠지는 게 있다면 바로 대사가 없다는 것뿐이다.
폭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전장을 목숨을 걸고 뛰는 종군기자, 맨몸으로 비행기에 매달려 공중촬영을 하고,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 위험천만한 촬영을 하는 카메라맨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뉴욕 거리에서 푼돈을 받고 스냅사진을 찍어주는 루크(버스터 키튼)를 보여준다. 순간 그가 무슨 일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오고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그의 주변에 자리를 형성한다. 국가적 차원의 행사가 진행되고 카메라맨들은 열심히 촬영을 하지만, 그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그때 그의 앞으로 샐리(마셀라인 데이)가 인파에 떠밀려오고, 루크는 그녀에게서 나는 향에 홀리듯 바라보고 첫눈에 반한다. 루크는 그녀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무작정 그녀가 일하는 MGM Newsreels(뉴스 형식의 영화) 부서에 지원한다. 샐리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즉석사진 형태의 스냅만 찍어봤지 필름을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기 일쑤인 그다. 실수만 하는 루크를 모두가 질타하는 와중 천사 같은 샐리는 오히려 독려해준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걸 당신이 했다면서. 그러면서 그에게 차이나타운에서 커다란 사건이 있을 것이란 정보를 알려준다.
버스터 키튼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카메라맨>은 제목 그대로 카메라와 그것을 이용한 촬영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의 카메라를 가리는 루크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특종을 놓쳐 아쉬워하는 카메라맨들의 감정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루크는 필름을 잘 이해하지 못해 이중, 삼중으로 겹쳐서 인화를 해버리곤 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필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원근에 의한 표현을 잘 살렸고, 필름을 빠르게 회전시켜 특수효과를 입혔다. 필름이 지닌 사각의 틀을 깰 수 있는 관점도 지녔다.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지는 소동에선 카메라와 총을 나란히 배치시켜 그 속성에 대한 은유도 담아냈다. 넘쳐나는 온라인의 정보로 인해 카메라를 익숙하게 다루지 않더라도 파지 하는 자세는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한 손으로 아래를 받치고 한 손은 셔터 위에 두고 촬영(shoot)하는 것은 총과 카메라의 유사한 속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현대인들의 카메라의 악용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상 누군가를 총으로 쏜 것이나 다름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촬영하는 이를 다시 카메라로 담기도 한 이 영화는, 자신이 영화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영화로서 포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지만, 오히려 대사 대신 이미지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해야 했던 한계가 있지만, 나는 1928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2019년에 만들어진 영화들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연락처를 교환하고자 핸드폰을 내미는 대신 주머니에 갖고 있던 메모지에 적어 건네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너무 떨린 나머지 번호를 적은 메모지 대신 펜을 건네는 순수함이 좋았다. 데이트 비용으로 저금통을 깨 동전을 한 움큼 챙기는 게 귀여웠다. 신장이 165cm였던 버스터 키튼은 자신의 작은 키마저 영화적 장치로, 설정으로 취해 그가 선보인 모든 장면이 사랑스러웠다.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영화. MGM 뉴스릴의 사장이 루크의 필름을 보곤 “That`s the best camera work I`ve seen in years!"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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