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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 아스트라>

Ad Astra, 2019

by 박종승


“어둠을 뚫고 별까지”라는 뜻의 "Per aspera ad astra“에서 빌려왔을까. <애드 아스트라>는 별까지 향하는 여정에서, 그리고 마침내 별에 다다랐을 때의 자신을 휘감는 여러 감정에 대해 말한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는, 그리고 영화 속의 인물들은 항상 어디론가 향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표의식과, 집념과, 열정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 광기, 회한 따위로 변한다. 그레이 감독의 인물들은 지도에 명확히 표기돼있지 않기도 하고, 가는 길이 여간 고되지 않을 곳으로 향한다. 감독의 전작인 <잃어버린 도시 Z>(2016)의 포셋(찰리 허냄)은 아마존 밀림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퍼즐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미지의 문명을 찾아 평생을 떠돈다.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집념은 이내 광기로 변모하고 만다.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2013)의 에바(마리옹 꼬띠아르), 브루노(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올랜도(제레미 레너)는 어떻던가. <더 야드>(2000)와 <투 러버스>(2008)에서 다루는 감정 역시 비슷한 것들이었다. <애드 아스트라>의 포스터엔 로이 역의 브래드 피트가 돌아보는 모습이 크게 걸려있었다. 제임스 그레이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로이의 감정 변화에 주목했다.


이 영화와 우주와 인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나란히 두고 볼 작품은 데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2018)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에 갔다는 게 일각에선 조작됐다는 음모론도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달에 도착했다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데미언 셔젤은 달에 어떻게 가느냐, 미션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서스펜스 대신 과정에서 닐의 내면에 더 집중했다. 우주로 향하는 영화이기에 그 목적지가 달이든, 화성이든 간에 일단 우주선이 발사돼야 한다. 우주로 향하는 영화에 없어선 안 될 장면, 그래서 이미 수도 없이 다뤄졌던 장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의도를 달리하는 것이겠다. 어느 영화든 자신이 본 영화를 떠올려보라. 10초 카운트를 세고, 빨갛다 못해 주황빛을 띄는 화염이 일곤 요동치는 기내의 인물들이 담담하거나, 긴장한 표정을 담더니, 추진체가 떨어져 나가고 이내 안정을 찾는 우주선의 모습. 데미언 셔젤은 이 과정을 온전히 닐의 클로즈업으로 대신한다. 출발 직전 기계의 잔고장이 나는 긴장되는 상황이나, 집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는, 그 이후로도 달에 도착하는 동안 카메라는 우주선 바깥의 모습을 담는 일이 거의 없다.


자, <애드 아스트라>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무음 처리된 화면엔 발사된 우주선 내에 있는 로이의 클로즈업이 담겨 있다. 화면은 흔들리고 있다. 그의 눈동자는 곧게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외부의 힘에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야 만다. "ad astra." 목적지가 분명히 정해져 있어 그곳을 향해가지만 로이를 흔드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주위를 조용하게 하고 로이의 내면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별까지 가는 동안 흔들리는 로이의 모습에 집중한다. 같은 이유로, 로이가 지구에서 출발해 목적지의 행성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동료들이 있었지만 감독은 그들을 차례로 퇴장시킨다. 로이의 독무대를, 독백을 위해.


인류 역사상 지구로부터 가장 먼 곳까지 갔다는, 우주비행사들의 꿈이자 영웅인 클리포드(토미 리 존스)의 아들인 로이는 아버지를 따라 우주비행사가 됐다. 이젠 지구에서 보다 우주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로이가 우주 안테나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전기 폭풍 “써지(surge)"가 덮쳐 지구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써지는 인류를 크게 위협하고도 남을 위력을 지녔는데, 이게 우주의 지적(intelligence) 생명체를 찾겠다는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오래전 실종된, 사망한 줄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해왕성에서 벌인 실험에 기인한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막아야 한다는 임무를 맡아 우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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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해왕성까지 45억 2353만 km. 그 오랜 시간을 담는 동안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0)의 흔적이 있었고, <에이리언> 시리즈나, <인터스텔라>(2014)의 이미지도 보였다. 123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아마도 편집 과정에서 줄이고 또 줄인 결과 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예산이 적었을 수도 있겠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욕심을 갖고 우주에 대한 장면을 더 넣었다면 180분도 충분히 가능했을 법하지만, <애드 아스트라>는 분명 123분이고, 그래서 줄어든 우주의 광활한 장면을 제외하면 로이의 내면이 온전히 남는다. 우주에서 모종의 사건을 겪고 로이는 “난 그 분노가 이해돼요. 그 분노의 껍질을 들춰보면 상처뿐이에요. 그래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죠.”라고 한다. <잃어버린 도시 Z>를 볼 때 들었던 생각이 <애드 아스트라>를 보며 확고해진 건,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는 밀림이나 우주를 다룬 여느 영화보다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광기를 그린 <지옥의 묵시록>(1979)처럼 울창한 밀림이나 광활한 우주 끝에 관객이 마주하는 한 인간의 광기, 그리고 그 너머의 심연을 담았다는 것이다.


미 특수부대 소속 윌라드 대위(마틴 쉰)는 전쟁의 광기에 빠져 조국을 배신한 커츠 대령(말론 브라도)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맡아 캄보디아의 밀림으로 향한다. <지옥의 묵시록>은 윌라드가 밀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고 체험하는 것을 담는다. 먼 길을 떠나는 만큼 처음엔 동료도 여럿이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광기에 빠져 하나둘 윌라드의 곁을 떠나고 결국엔 홀로 남아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로이의 상황은 딱 윌라드의 것과 일치했다.


다른 게 있다면 윌라드 대위는 이전 작전에 실패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고, 로이 소령은 이전 경력이 아주 완벽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인물이었다는 것이겠다. 다시, 윌라드는 이미 겪은 실패로 껍질이 벗겨진 상태였고, 로이는 이번 작전을 통해 실패를 겪게 된다. 술독에 빠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윌라드의 모습으로 시작한 <지옥의 묵시록>과는 달리, 해왕성까지 그 먼 길을 항해해나가는 동안, 그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숙고하며, 또 흔들리는 로이의 모습을 담는 <애드 아스트라>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의 뜻이 “별까지”일 것이다. 그래서 화성에 도착해 주요 사건이 펼쳐지는 <마션>(2015)이나, 우주 자체를 담는 <그래비티>(2013)와 이 영화가 다른 이유일 테다.


광활한 우주에 있으니 인간은 한 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영화는 우주로 나아간 로이의 모습을 익스트림 롱샷으로 담는다. 스쳐가듯 보면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작은 크기의, 그래서 하얀 우주복을 입고 있는 인간은 우주를 떠도는 돌덩이나, 먼지, 조금 예쁘게 말하자면 작은 별처럼 보인다. 그 작은 존재 자체가 이 영화의 딜레마다. 한없이 작고, 또 작은 존재는 무(無)에 점점 수렴한다. 목성이나 화성에 간 영화들을 제치고 가장 먼 곳인 해왕성에 가고자 함은 <애드 아스트라>가 이제껏 다른 영화들이 가지 못했던 더 깊은 곳으로 밀고 나가고자 했음을 암시한다. 분명 <그래비티>보다는 우주를 유영하는 장면에서 새롭지 않고, <마션>보다는 드라마가 역동적이지 않고, <인터스텔라>보다는 압도적이진 않지만, <애드 아스트라>는 어느 영화보다 인물의 깊은 내면으로 향한다. 그 고독한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상기하는 로이가 있는가 하면, 그 침잠에 끝도 없이 파묻힌 클리포드도 있다. 로이는 <퍼스트맨>의 닐과 <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에 가깝고, 클리포드는 <잃어버린 도시 Z>의 퍼시와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에 가깝다.


다른 결말을 맞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처럼 각자의 모습을 각자 내면의 우주에 품고 있다. 우주로 나가기 직전 “꼭 필요한 선택만 하겠다.”며 다짐한 로이의 말처럼, 하나를 선택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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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구에서 출발한 로이가 우주를 항해하는 여정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선 로드무비의 성격도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심박수가 80을 넘지 않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로이는 아버지를 따라 지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지구에서보다 우주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인간이 우주로 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주의 행성마저 지구처럼 개발해놓은 것을 보고 “아버지가 이걸 보셨다면 다 때려 부쉈을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우주로 향했으나, 종국엔 아버지와 반대로 지구로 돌아간다. 영화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로이가 아버지에게로 향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이 중력을 거스르고 뛰어오를 수 있는 데엔 개인차가 있겠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로이는 우주에서의 고독에 빠져있는 동안 지구에 두고 온 것들에 대한 후회를 한다. 지구에서의 삶에 대한 회한과 함께.


“난 살면서 많은 잘못을 했다. 귀 기울여야 할 때 말했고, 다정해야 할 때 가혹했다. 늘 진실하겠다고 약속해놓고 그러지 못했다.” 더 힘차게 도약할수록 땅에서 흙먼지는 더 크게 일어난다. 클리포드가 지구를 등지고 더 거세게 멀어져 간 만큼 강력한 써지가 일었다. 로이는 기술의 발달로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고 우주로 나아갔으나,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존재를 잊었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엘프 아르웬 역을 맡았던 리브 타일러가 로이의 아내 이브 역을 맡았다. 아르웬은 영생을 누릴 수 있었으나 자신이 사랑했던 인간 아라곤(비고 모텐슨)을 생각하며 수도 없이 뒤를 돌아봤고,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번엔 반대로 그녀를 두고 로이가 떠나갔으나 이제껏 로이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우주로 나아간 인물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빠져있는 우주의 빈자리. 익스트림 롱샷의 쓰임으로 한없이 작아 보였던 인간처럼, 인간들이 발자국을 찍은 행성들도 이 광활한 우주의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가까이 서보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인간의 내면도 그러하지 않을까. 끝도 없이 펼쳐진 소우주의 주인은 분명 ‘나’이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것들이 가득할 테고, 보려고 하지 않아서 한없이 작아 보였던 문제들에 막상 주목하고 나면 그렇게 커다랗게 보일 수 없을 테다. 로이는 그동안 자신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마주하게 됐고, 지나온 거리와 시간만큼 아버지의 소우주를 인정하게 됐으리라. 그리고 자신의 소우주에서 발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그것을 둘러싼 장애물들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방패를 들어야만 했다.


우주에서의 무엇도 흔들지 못했던 로이가 비로소 흔들린 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다. 그를 도와줄 어떠한 인물도 없는 와중 홀로 카메라 앞에서 그것을 표현해낸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필름에 담길 고집한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는 아름답기만 하다. 태양이 발하는 빛을 그 무엇도 여과시켜줄 것이 없으니 그 백색광에 눈이 멀 것만 같다. 그 자체로 광기를 의미하는 붉은 행성에서의 빨간 조명과, 역시 그 자체로 냉혹함을 말하는 푸른 조명의 쓰임도 좋다. IMAX로 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회사가 제작/배급한 영화의 Non-IMAX 컨텐츠를 걸어놓느라 이 영화를 IMAX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참으로 아쉬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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