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滩的一天, 1983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2000)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는 현실을 닮아 있어.”
-“그럼 뭐 하러 봐? 그냥 현실을 살면 되지.”
“우리 삼촌이 이런 말을 했어. 영화가 생겨난 후로 인간의 수명이 3배 늘어났다고.”
-“정말? 말도 안 돼.”
“일상을 통해 얻는 것 말고도, 영화를 통해 2배의 삶을 더 경험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살인 같은 거. 우리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잖아. 영화를 통해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은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 작품 속 세상을 직접 겪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했었다. 그리고 본인의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 역시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랐을 것이다. 나는 대만에 가본 적도 없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세기의 대만 역시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세상을 직접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때론 2023년의 세상과 수십 년 전 영화 속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고 놀라곤 한다.
장개석이 1949년 중국에서 쫓겨난 후 1987년까지 독재정권 하 계엄령이 유지되었고,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30대 두 여성의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를 오가는 방식을 취한다. 영화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과거 사랑에 실패하고 자국을 떠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남성중심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의 남편을 이용하는 커리어우먼,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평생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아온 주인공의 엄마 등 다양한 군상의 여성 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볼 수 있다.
보통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이 그렇듯 러닝타임이 비교적 긴 편이고(해탄적일천 166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37분, 하나 그리고 둘 173분), 그것을 구성하는 롱 테이크와 롱 숏이 많지만, 영화란 건 어떻게 이 러닝타임 안에 이야기를 편집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시간의 매체이고, 나는 이 길다면 긴 러닝타임이 에드워드 양 감독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심을, 전력을 다하고 있음이라 말하고 싶다. 약 4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정식 개봉한 영화 <해탄적일천>은 그 첫걸음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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