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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Feb 07. 2023

<잘 알지도 못하면서>

Like You Know It All, 2009


“에이 싯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저지르는 게 아니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하세요?” 애초에 지키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지만, 지키지 못하게 될 상황이 오게 될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나, “진짜 사랑”을 만났다고 확신했었지만, 지나고 보면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던 게 아닐까.


10년 전보다 20년 전의 나는 훨씬 더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 아닐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할 수 있고, 애벌레가 후에 어떤 모습의 성충이 될지 또한 모를 수 있다.


영화감독 구경남은 제주에 특강을 하러 간다. 자신의 영화를 틀어준 후 질의응답에 한 학생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 거예요?” 라 물으니, “제 능력과 기질은 하나뿐이 없습니다. 정말로 몰라서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과정이 나로 하여금 계속 뭔가 발견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겁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구체적인 것을 매번 만날 뿐 체계적으로 미리 갖지 않는 것, 매번 발견하는 것, 단지 감상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여학생은 비웃듯 말한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철학자시네요.”


아는 체하며 열변을 토했지만, 사실은 열렬히 자기 생각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건지도 모른다. 정작 다른 감독이 만든 작품 앞에서 그는 연신 꾸벅꾸벅 졸았으니 말이다.


우리의 주변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우연히 우리의 눈에 들어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영화가 시작하며 분수대, 수영장, 호수, 강, 바다로 물의 이미지가 점차 커지더니 마지막 장면엔 굽이굽이 몰아치는 먼바다를 풀샷으로 잠시간 담긴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도 매 순간이 다 다른 이미지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물론이고 해의 위치도 달라지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 조차도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나는 저 바다를 오늘 눈으로 직접 보고 왔는데도 잘 알지 못하겠다. 잘 알지 못하겠음을 이렇게 장황하게 쓸 일인가. 잘 알지 못함 자체에 빠졌다면, 경남의 “정말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대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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