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Sohee, 2022
고등학교 취업반인 소희(김시은)는 콜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수화기 너머의 욕설과 음담패설은 물론, 단지 숫자로만 평가되는 실적에 쫓기며, 심지어는 함께 근무하는 직장동료 내지는 친한 언니라 여겼던 이들과 그 숫자로 경쟁을 하게 된다. 단지 일을 열심히 해서 개인의 실적을 높이면 그것이 집단의 기준치가 되어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기도 하며, 그렇다고 적당히 하자니 자신이 높여놓은 기준치에 못 미쳐 평가가 떨어진다. 현장실습을 나온 학생이라는 이유로 교묘한 권모술수로 착취당하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던,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학교는 다시 취업률이라는 실적을 운운하며 아이들을 현장으로 돌려보낸다. 이런 현장과 학교를 감독해야 할 지자체에선 다시 실적이라는 이름 앞에 숫자를 말하기 바쁘며, 사건이 벌어져 수사를 하게 된 형사들 역시 같은 실정이다. 책임을 물으러 간 이에게 교육청 직원이 “그래서, 다음은 교육부로 가시게요?”라는 말보다 두터운 벽은 없을 것이다.
그간 많은 영화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스물 즈음에 있는 학생들의 노동 현장에 시선을 둔 건 이 영화의 특징이겠으나, 단지 특정 연령대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테다. 숫자를 중심으로 한 실적과 정량평가에 대한 날 선 비판에서 자유로운 곳은 이 땅 위에 없을지도 모른다. 위에선 숫자로 나를 압박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그 잣대를 들이밀지 않겠다는 다짐은 누구나 하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숫자를 채워야 하는 관리자의 위치에선 다시 그 숫자를 외면하기 어렵고,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줄어든다면, 위에 보고할 숫자를 높이기 위해 당초 생각과는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그런 이준호 팀장(심희섭)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갔다. 준호는 처음 실습을 나온 학생들을 차분하고 다정한 투로 격려하고 독려했으며, 때로 그들의 수화기를 대신 받아주는, 현장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려 했던 인물이었으나, 역시 실적이라는 숫자 앞에 무력해지고 만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1부’와 ‘2부’를 언급하며 구성을 나누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소희의 1부와, 이후 소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진(배두나)의 시점을 따라 2부로 나뉜다. 하지만 단지 두 인물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이들의 주위에 있는 많은 인물들이 이전의 “소희”였고, 지금의 “소희”이며, 다음의 “소희”가 된다. <다음 소희>는 이 소희들에게 시선을 두고, 소희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힘들면 나한테 말해도 돼.’라 말하며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길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 영화다. 그것들을 다소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인 인물들의 대사로써 표현하는 것은 영화를 단조롭게 하지만, 그것을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다. 정주리 감독의 전작 <도희야>(2014)에서 역시 좌천된 파출소장을 연기했던 배두나가 다시 한번 좌천된 강력계 형사로 등장하며, 열네 살의 도희에 이어 열여덟 살의 소희에게 곁을 내어준 다음이, 순수하고 정직하게 소희 역을 소화해 낸 김시은의 다음이, 정주리 감독이 시선을 둘 다음 나이는 몇 살일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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