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sun, 2022
상영관 내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아직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캠코더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간 세대의 산물인 캠코더는 화질이 선명하지 않고, 그것이 캠코더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연스레 과거를 회상하는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캠코더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금 이걸 작동하는 이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지만 영화 속 인물과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시점은 동일시된다. 11살의 어린 딸이 이제 곧 31살이 될 아빠를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아빠의 나이가 된 현재의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동영상 속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어깨를 나란히 해본다.
소피가 보고 있는 캠코더의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했으며, 소피가 보고 있는 캠코더의 영상으로 영화가 끝났다. 영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캠코더에 담긴 영상은 다섯 개 정도이고, 그것을 제외하곤 모두 소피의 기억이거나 소피에 의해 새로 쓰인 기억들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기억이란 것은 연약하기 그지없다. 필요하다면 조작할 수도 있고, 파편화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다 가공하며 새로운 살을 붙이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주위의 기억들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소피의 기억들은 모두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소피의 기억을 캠코더에 담긴 영상과 편집해 만든 미학적 성취는, 다시, 소피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에서 영화가 지닌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캠코더에 담기지 않았거나, 소피와 함께하지 않는, 그러니까 캘럼 혼자 등장하는 장면은 온전히 소피의 상상인 셈이다. 11살의 소피는 당시의 캘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작은 다툼 이후 홀로 밤바다에 들어가는 캘럼의 모습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혹은, 시간 순서가 정확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소피가 본 장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이 영화의 화법이다. 그렇기에 무엇도 단정하고 싶지 않다. 캘럼의 상태라던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 소피의 방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들 모두 말이다. 소피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으나, 나의 기억을 소피의 기억에 이어 붙이는 순간 그것은 2차 가공이 된다. 무수히 많은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 2차 가공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모호함이 계속되는 탓에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일 테니.
영화 속 캠코더의 영상으로, 이제 여행을 마치고 헤어질 순간의 어린 소피가 보인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는 소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캘럼. 직후 영화의 시점이 빙글 돌더니 캠코더를 들고 있는 캘럼을 담는다. 이때의 화질은 캠코더의 것이 아니었다. 캠코더를 보고 있는 소피의 것이었고, 번쩍번쩍 점멸하는 클럽으로 걸어 들어가는 캘럼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너무 어둡고, 번쩍이는 탓에 인물의 표정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아마도 캘럼은 춤을 춘다기보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캠코더의 영상이 아니다. 지금의 소피가 어렴풋이 짐작하는 당시 캘럼의 모습일 뿐이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어쩌면 지금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일 뿐일 수 있지만. 많이 드러내지 않고, 많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호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퀸의 <Under Pressure>(1981)가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감상들, 그때 튀르키예에서 산 카펫 같은 영화로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감정들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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