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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01. 2023

<애프터썬>

Aftersun, 2022

상영관 내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아직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캠코더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지나간 세대의 산물인 캠코더는 화질이 선명하지 않고그것이 캠코더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연스레 과거를 회상하는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캠코더의 주인이 누구인지지금 이걸 작동하는 이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지만 영화 속 인물과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시점은 동일시된다. 11살의 어린 딸이 이제 곧 31살이 될 아빠를 카메라에 담았다당시 아빠의 나이가 된 현재의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동영상 속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어깨를 나란히 해본다.


소피가 보고 있는 캠코더의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했으며소피가 보고 있는 캠코더의 영상으로 영화가 끝났다영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캠코더에 담긴 영상은 다섯 개 정도이고그것을 제외하곤 모두 소피의 기억이거나 소피에 의해 새로 쓰인 기억들이다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기억이란 것은 연약하기 그지없다필요하다면 조작할 수도 있고파편화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다 가공하며 새로운 살을 붙이기도 한다어떤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주위의 기억들을 짓누르기도 한다그래서 우리가 보는 소피의 기억들은 모두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소피의 기억을 캠코더에 담긴 영상과 편집해 만든 미학적 성취는다시소피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에서 영화가 지닌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캠코더에 담기지 않았거나소피와 함께하지 않는그러니까 캘럼 혼자 등장하는 장면은 온전히 소피의 상상인 셈이다. 11살의 소피는 당시의 캘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그가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작은 다툼 이후 홀로 밤바다에 들어가는 캘럼의 모습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혹은시간 순서가 정확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소피가 본 장면일 수도 있다어느 쪽이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이 영화의 화법이다그렇기에 무엇도 단정하고 싶지 않다캘럼의 상태라던가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현재 소피의 방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들 모두 말이다소피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으나나의 기억을 소피의 기억에 이어 붙이는 순간 그것은 2차 가공이 된다무수히 많은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 2차 가공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모호함이 계속되는 탓에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일 테니.


영화 속 캠코더의 영상으로이제 여행을 마치고 헤어질 순간의 어린 소피가 보인다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는 소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캘럼직후 영화의 시점이 빙글 돌더니 캠코더를 들고 있는 캘럼을 담는다이때의 화질은 캠코더의 것이 아니었다캠코더를 보고 있는 소피의 것이었고번쩍번쩍 점멸하는 클럽으로 걸어 들어가는 캘럼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영화가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너무 어둡고번쩍이는 탓에 인물의 표정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아마도 캘럼은 춤을 춘다기보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이것은 캠코더의 영상이 아니다지금의 소피가 어렴풋이 짐작하는 당시 캘럼의 모습일 뿐이다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어쩌면 지금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일 뿐일 수 있지만많이 드러내지 않고많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호하지만이 영화가 주는 퀸의 <Under Pressure>(1981)가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감상들그때 튀르키예에서 산 카펫 같은 영화로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감정들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애프터썬 #폴메스칼 #프랭키코리오 #샬롯웰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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