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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09. 2023

<스즈메의 문단속>

すずめの戸締まり, Suzume, 2022

<스즈메의 문단속>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관객을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안으로 데려간다토끼를 따라 들어간 세계에서 앨리스가 모종의 사건들을 겪고 나오는 동안 현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으며주변 인물들은 앨리스의 부재 또한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신카이 마코토는 전작들에서 홍수나 혜성 충돌 같은 다른 형태의 재난으로써 일본이 겪은 대지진을 묘사해 왔다. 이번 영화에서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가 현실과는 유리된 또 다른 세계를 다룬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인 스즈메는 심지어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로 설정돼 있다. “문을 찾고 있어라 말하는 소타에게 아름답다며 첫눈에 반한 스즈메는 뒤늦게 그를 쫓아갔다가 발견한 낡은 문을 발견하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문을 열고야 만다문 너머의 저세상을 보고 난 후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괴물 미미즈를 보게 되는데이는 지진을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 열도 아래에 꿈틀대다가 예기치 못한 순간 문을 통해 나오려 할 때 토지시(문을 닫는 이 라는 뜻)”인 소타가 그것을 봉인해왔다고 한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필사적으로 미미즈를 막으려 하는 스즈메와 소타의 행위는 재난이란 것이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자연재해라는 것이 물론 인간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꼭 그렇기만 하다면 발생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스즈메가 여정 속 만나는 이들은 더없이 선하다한쪽 다리가 없는 의자가 자기 의지로 거리를 활보하는 와중 사람들은 그저 카메라에 담아 SNS에 올릴 뿐이며아무런 대가 없이 스즈메를 돕는 이들뿐이다.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선의와 재난의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에게 갖는 애도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초속 5cm>(2007)의 순간을 섬세한 작화로 표현해내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지만 현실에 가까운 표현이 놀라운 경지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이기에 현실과는 분리될 수밖에 없는 장르의 한계를 인정한 건지도 모르겠다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었을 테지만 유년시절 스즈메의 일기를 검게 덧칠하는 것으로 대신했으니 말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이 지나간 도시를 언급할 때에만 현실에 가까워지려 하고나머지는 모두 오히려 환상에 가까워지려 한다. <날씨의 아이>(2019)에서 히나가 호다카에게 이 비가 멎기를 바라?”라고 물으며 입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보인다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서 여성들을 관음적 시선으로 보는 이미지가 나오나 했더니 투명한 수조처럼 변한 몸이 보인다자신이 제물이 되어 날씨를 맑게 할 때마다 점차 투명해지다가 소멸하고야 마는 운명을 지닌 히나였다히나는 호다카에게 그리고 동시에 관객에게 어디를 보는 거야?”라고 묻고히다카는 “어디도 안 보고히나 씨를 보고 있어요.”라 답한다현실처럼 느껴질 정도의 작화였으나 결국 환상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지점으로 느껴지고, <스즈메의 문단속역시 그러하다.


일전에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에 대해 말하며 아사코가 고쵸 시게오의 사진전 <SELF AND OTHERS>에 갔다가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따라가는 건지우연히 가는 방향이 같은 건지 모를 장면에서 둘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후반부 고양이를 찾던 아사코에게 포기하고 돌아가라던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쫓아갈 때에도 좀처럼 좁혀지거나 멀어지지 않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다영화가 시작하며 보이는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강은 강을 이루는 작은 물방울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흘러가고 있기에 작동한다고 쓴 적 있는데신카이 마코토 역시 그 거리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주는 영화적 재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공허함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스즈메의문단속 #하라나노카 #마츠무라호쿠토 #신카이마코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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