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e No Trace, 2018
이 영화의 대부분은 사람이 아닌 버섯을, 풀을, 나무를, 숲을 보여준다. 어떤 음악도 깔리지 않고, 그 초록의 것들이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스한 햇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부서져 떨어질 때, 비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릴 때, 비가 그친 뒤 촉촉하게 젖은 흙들이 그렇다. 누가 매시간 나의 흔적을 지워주는 것도 아닌데 숲 안에선 계속해서 낙엽이 떨어지고, 빗물이 쓸어가고, 거미줄이 시야를 흐리게 해 내 발자국을 지운다. 그저 푸름을 발산하는 이름 모를 나무였던 것이, 어느 순간 캘리포니아의 고객에게 갈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가지가 어떻게 나고, 어디는 어떻게 잘라내야 하고, 나무가 나무일 뿐이지 어떻게 생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던가.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안간힘을 쓰고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려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안간힘을 쓰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이가 있다. 좀 전에 찍힌 발자국도 지우고 싶어 하는 이에게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그에겐 도시의 모든 것이 소음이고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딸에게, 사실 그의 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생활이 만족스러우냐고 물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발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추운 날씨에 딸의 발자취는 아빠의 따스한 배에 남겨지게 된다. 딸은 아빠가 아닌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 한다. 아빠가 주도하는 발자취 지우기 훈련에서 번번이 실패하고야 마는 것은 할 수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딸은 벌집에 사회를 구축하고 사는, 그래서 벌들에게서 발생한 온기를 아빠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서로 신뢰를 구축하고 그러므로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느끼는 이와, 벌에 쏘여 죽지 않을까 겁에 질리고야 마는 이는 대조적이다. 같은 숲 안에 있어도 아빠는 세상과 유리되기 위한 곳으로, 딸은 토끼, 벌, 강아지,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곳으로 의미가 굳어간다. 필요한 것(need)이냐, 원하는 것(want)이냐는 결국 내 생각은 내 것, 네 생각은 네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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