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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Aug 10.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Concrete Utopia, 2023

부녀회장 금애(김선영)의 말처럼 살인범이나 목사님이나 똑같은 세상이 됐다개인적으론 유토피아란 것을 떠올리면 푸른 들판에 새소리가 맑게 들려오고눈부신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와중 산들바람이 내 머리칼을 가볍게 흔드는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데인류는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그것들을 모두 덮어 빌딩숲을 만들었다재난으로 그 빌딩들이 모두 무너지고단 하나의 아파트만이 남았을 때 제한된 공간식량 등의 이유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설정은 단순하다그 디스토피아에서 어떻게 다시 유토피아를 구축해 나갈 것인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전에 썼던 질서를 다시 가져오지만어떤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자원을 구하러 탐험을 떠나는 것은 남성들이요리나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여성들이 하게 되고다소 캐릭터의 외모나 대사가 딱 첫눈에 예상이 가능한 전형적인 것은 아쉬웠으나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도 같다당장 오늘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지 모르는데 이전에 갖고 있던 신념 같은 것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채식주의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할 것이고 반려견이라고 키운 강아지들이 식용으로 쓰이는 건 더더욱 그럴 것이다영하 30도에 가까운 날씨에 남의 집이라고 들어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생존에 대한 본능에 충실한 것그 모습이 어떤 것들이었든 그들은 모두 평범 그 자체였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와중 아파트를 지어 생활환경을 개선코자 콘크리트로 유토피아를 건설한 것이 어느덧 수십억의 가격이 붙어 그것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인류가 원했던 유토피아가 맞는가오프닝에서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란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지 짧고 쉽게 조명하며 그래서 눈을 떠보니 세상이 무너져있는 디스토피아로 단숨에 넘어가 주조연 할 거 없이 모든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그간 이런 식의 디스토피아아포칼립스는 너무 많이 봐왔다엄태화 감독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잘 떠오르진 않는다세상이 전부 무너졌는데홀로 우뚝 솟아있는 황궁 아파트처럼 다시 수직적인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이들은다시 그 수직적인 구조 때문에 파국을 맞는다명화(박보영)가 끝내 다다른 곳은 세로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로로 누워있는 아파트에서 그냥 살아도 되는 거예요?”라는 물음에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요그냥 사는 거지.”라 답하는 수평적인 곳이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어느새 낯선 세상이 됐다새로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는윗집 아주머니가 엄마 대신 밥을 차려주는 세상은 지나갔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란 슬로건을 외치며 외부인을 구분해 내고, 내부에서도 자가(自家)냐 아니냐로 계급을 나누려는 와중 대출을 끼긴 했어도 우리 집 맞아요라 말하는 한국형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건단지 그동안 이런 장르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콘크리트유토피아 #이병헌 #박보영 #김선영 #박서준 #박지후 #엄태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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