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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y 05. 2024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We Couldn`t Become Adults, 2021

카카오톡 프로필을 변경했다며 오랜만에 너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곧 결혼을 한다고 웨딩 사진을 걸어둔 것이었다대학에 가서 공부하고취직해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은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했던 너였다옛날 생각이 나 대충 비닐봉지에 담아 아무렇게나 묶어뒀던 일기장들을 펼쳐 본다. 2010년엔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이 리그에서 우승을 했다. 2002년엔 한일 월드컵을 했다학교에서도 축구 응원하라고 일찍 하교시켜 주기도 했다. 2020년엔 코로나가 전 지구를 집어삼켰다무언가 부단히 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어떤 해들을 기억하고 있다나이는 먹었는데무언갈 하지 않았으니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인 것 같다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나만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만 같다나만 그대로인 것 같다.


클릭 한 번이면 단숨에 내가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이따금씩 새끼손가락이나 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한참 감고 앉아있던 것처럼 내 몸에 새겨진 단어들을 되뇌는 시간이 필요하다내가 받아들일 능력이 없어서혹은 내가 피하고 싶어서 애써 외면했던 단어들이 성불하지 못하고 내 몸 가득히 남아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추천해 줬는데너는 왜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스토리에 올렸었을까성불하지 못하고 유령처럼 남아있던 단어들이 깜뭇 멀어져 간다. 나한텐 아무것도 없지만, ‘어디로 가느냐가 아닌 누구와 가느냐에 집중하며 그저 그런 하루들을 사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 않았었을까나보다 더 사랑하게 됐었던 그녀와 그 시절에 검정치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그곳은 우리에게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우리는모두어른이될수없었다 #모리야마미라이 #이토사이리 #스미레 #카타야마모에미 #히가시데마사히로 #모리요시히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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