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카시오페아였어.” 이젠 이 말을 입에서 꺼내는 것만으로도 겸연쩍은 미소가 절로 나지만, 육안으론 이목구비도 보이지 않을 만큼 먼발치에서 본 게 다인 그들을 나는 그렇게 좋아했다. 둘과 셋 중에서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조차 버거운 20대 초반의 존재들이었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나는 그 나이 때 더없이 혼란스러웠다. 내 주변의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더 지나고 보니, 그 존재들이 안쓰러워졌다.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와 비밀리에 열애를 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들도 하나의 존재로서 누릴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 존재가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자유로운 모든 존재에게 손가락질할 권리는 그 어떤 존재에게도 없다.
대중이란 것은 참으로 비겁하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무대 위로 올라간 존재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하고, 오해하고, 그리고 판단한다. 무대 위의 존재가 용기를 내서 어떤 행위를 하는 동안 대중은 말 그대로 비열하고 겁이 많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게 어디가 됐든, 규모가 어떻든 무대에 오를 용기는 없으면서, 무대에 오른 이를 지적하는 건 너 나할 것 없다. 나는 내가 대중이 되는 순간을 언제나 경계하려 한다.
그는 내가 본 누구보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 소리 높였다. 무대 위든 어디든 자신이 온전히 독립된 주체, 개체임을 말했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단 몇 분의 시간, 대중에게 노출시킨 단 하나의 이미지,를 제외한 그 많은 시간 동안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설리라는 이름 너머에 있던 그 마음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이젠 아프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