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Slayer: Kimetsu No Yaiba Infinity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단지 원작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라는(물론 ott에서의 관람도 좋겠지만) 포맷이 지닌 특징을 잘 활용한 케이스인 것 같다. 무한히 늘어나고 왜곡되는 무한성이라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활약하는 캐릭터들의 서사가 만화책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또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영화로 옮길 만한 충분한 사유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있다. 200여 명의 원화 담당자, 40여 명의 작화 담당자들의 오랜 수고가 스크린을 통해 너무나 잘 전달된다.
사실 이전까지의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보는 데에 있어 방대한 사전지식은 필요하지 않았다. 각각의 인물이 다양한 성질의 ‘호흡’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전혀 지장 없었다. 각각의 원소들에 상성이 있는지 계산할 필요도 없이 그저 화려하면서도 경쾌한 타격감과 귀를 사로잡는 소리가 가미될 뿐이었다. 이 영화가 시작할 때에도 큰 어르신이 자신이 미끼가 될 테니 무잔을 꼭 쓰러뜨리자고 한다. 본인이 누군지, 무잔이 누군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적을 물리치자고 대의를 선포하고 그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무한성편>에서는 그것들 속의 깊은 서사를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모두 설명할 수 있지만, 하이라이트 격인 아카자를 예로 들자면 <귀멸의 칼날> 속 혈귀들은 당초 모두 인간이었다. 당초 선과 악이 캐릭터의 탄생시점부터 구분돼 있던 <드래곤볼> 시리즈나, 태생은 같은 닌자였으나 정치, 사회적인 이슈로 대적하게 되는 <나루토> 시리즈도 있었으나, <귀멸의 칼날> 속 혈귀들은 인간으로서 절벽에 내몰렸을 때에 혈귀가 되게 된다. 혈귀가 되어 인간을 잡아먹으며 지낸 지도 수백 년이 지났으나 그들은 당초 인간이었다. <귀멸의 칼날>의 특이점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영화는 탄지로와 기우가 아카자와 맞서기 전, 아카자가 인간이었을 때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먼저 보여준다. 귀살대를 주인공으로 두는 <귀멸의 칼날>에서 혈귀는 근본적으로 악당의 포지션이지만, 관객은 왠지 아카자의 선택을 인정하게 된다. 적어도 공감정도는 하게 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성이란 공간은 <진격의 거인> 시리즈의 ‘숲’과 같다고 본다. 에렌 일행이 그 밖은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성벽 밖의 세상으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어떤 결계(숲) 안이었고, 그 너머 바다의 저편에는 진정 자유가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바다 너머 마레 제국에 갔어도 여전히 어떤 결계 안이었다.
주인공 탄지로는 그 안에 지닌 잠재력이 얼마나 방대한지는 모르나, 당장 귀살대로서의 실력은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는 상현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격이다. 하지만 그런 탄지로에게 모종의 계기로 혈귀들은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패배함으로써 오히려 해방된다. 아카자는 마치 <드래곤볼> 시리즈의 전투민족 사이어인처럼 끝없이 강함만을 추구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 그가 인간이었던 시절에 강해지고 싶었던 이유는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귀살대와 혈귀의 대결에서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하고, 앞서 젠이츠가 카이고쿠를 물리쳤을 때, 그리고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혈귀들처럼 먼지가 되어 날아갈 테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오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탄지로가 이전 시리즈의 렌고쿠나, 이번 시리즈에서 내내 옆에서 함께 싸우는 기우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주인공으로서 지니는 특이점은 그가 혈귀들과 더 다양한 면에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지로가 귀살대가 된 것은 혈귀에게 가족이 희생됐기 때문이었으며, 동생 네즈코는 혈귀가 됐기 때문이다. 네즈코는 특수한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 네즈코는 혈귀가 되고 싶지 않았고, 혈귀가 되고 나서도 인간을 해치지 않았다. 혈귀를 단순히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인 탄지로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이유일 것일지도 모른다. 탄지로는 스스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적대 관계에 있는 혈귀마저 주인공의 위치로 격상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 이번 <무한성편>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너는 떠드는 걸 싫어하나 보네? 나는 떠드는 걸 좋아하는데!”라는 아카자의 대사처럼, 다소 말이 많아 지루한 구석도 있지만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여러모로 괜찮은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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