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2024

by 박종승

원작 소설을 쓴 박상영 작가는 책 제목으로 내건 <대도시의 사랑법>이 있음을 말했는데, 그의 단편 소설 네 편을 엮은 책을 다 읽었을 때에 귀납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소설을 영화화한 이언희 감독은 그중 ‘재희’라는 이름의 단편을 길게 펼쳐선 그 안에 감독이 생각하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말한다. 소설에선 주인공이 ‘영’이거나 ‘나’로 불리며, 그러면서도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영’인지 ‘나’인지 불분명하게 전개했다. 그와 달리 영화의 주인공은 흥수(노상현)와 재희(김고은)로 특정돼 있다. 또,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속 엄마의 캐릭터를 가져와 장혜진 배우가 연기하게 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흥수와 고은의 아웃사이더 기질을 공통분모로 삼아 엮어선 계속해서 대조되는 면을 강조하며 서사를 전개한다. 도시만의 사랑을 하는 방법을 제목으로 걸고선, 두 남녀가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는 장면을 포스터로 정해 얼핏 두 남녀가 진한 사랑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흥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아직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재희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이 무엇인진 몰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고자 한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상처를 입는 사건들이 두 인물에게 각각 펼쳐지지만, 둘은 굳이 식탁을 두고 반상에 찌개를 끓여선 밥을 먹는다. 그리곤 살을 맞대고 누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한다. 비슷한 점이 있어 함께하기로 했으나, 우리는 모두 개인으로서 다르기 마련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둘은 한 집에서 살게 됐고, 끼니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가족이 된다. 이유는 다르지만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내는 둘에게, 가족이 없던 둘에게 둘은 서로 가족이 되어 준다. 새벽마다 엄마에게 이 병이 치유되길 바란다며 기도를 받아야 했던 흥수의 아픔이나, 초등학생 시절 우유갑을 그리라는 숙제로 반 친구들 중 유일하게 찌그러진 우유갑을 그려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자 따돌림을 당했던 재희의 아픔은, 커뮤니티에서 ‘다른 존재’로서 받았던 아픔이란 이유로 다시 둘을 엮는 공통점이 된다.


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들끼리 모여 목소리를 내다가 그치던 이야기들과 달리 이 이야기엔 이성애자인 재희가 있다. 이성애자로서 남성과 결혼을 하고 이 사회가 말하는 보통의 제도에 편입할 수 있는 재희에겐 여성으로서 남성이 집을 훔쳐보고 속옷을 훔쳐 가는, 폭력 가해자임에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남성과 그것을 보며 잠시나마 공감하는 남성들의 모습 속에서 흥수가 받는 젠더 폭력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성소수자가 아니어서, 그 폭력을 당해본 적 없어서 느끼는 아픔의 크기를 알지 못하지만, 둘의 크기가 같다는 건 아니다.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의 유사성에서 흥수와 재희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남성들 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 틈에서 게이라는 이유로, 한 커뮤니티 안에서 무언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인물들과 또 다른 인물이 공통점을 찾고, 서로 연대하며 이겨내는 방법을 강조한다. 이언희 감독이 말하는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것이 아닌가 싶다. 마케팅 때문인지 여느 로맨틱코미디물처럼 포장하려던 의도를 넘어서는 무엇이 이 이야기엔 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며 서로의 존재를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의 말이 지닌 힘이 결코 작지 않기에.


#대도시의사랑법 #김고은 #노상현 #장혜진 #이언희 #영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