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Battle After Another, 2025
혁명이란 게 뭘까. 혁명에 임하는 태도는 어떠한 것일까. 누구의 말처럼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 소리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며 밀고 나아가는 것만이 답일까. 과거엔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래엔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련 속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때로는 가만히 멈춰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혁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노의 도박사>(1996)나 <부기 나이트>(1997)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비로소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에 등장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는 더없이 적절한 시기를 고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가 그러지 않은 순간이 있었겠느냐만, 그 생에 최대의 시련과, 혁명의 순간을 앞둔 그의 외모는 더없이 후줄근하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오래간 봐왔고, 그 오랜 세월만큼 다양한 모습을 봐왔다. 그야말로 청춘예찬 같았던 <토탈 이클립스>(1995)의 랭보나 <로미오와 줄리엣>(1996), <타이타닉>(1997)에서의 매혹적인 외모,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나 <위대한 개츠비>(2013)를 거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이제는 완숙하면서도 멋들어졌던 모습도 왠지 밥 퍼거슨 역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당장 그는 바로 옆에서 혁명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사랑했던 퍼피디아(티야나 테일러)와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어쩔수가없다>(2025)에서 만수의 코믹한 면을 어필하기 위한 이병헌의 노력과는 다른 것일 것이다. 밥을 연기하는 디카프리오에게서는 경북 구미의 박정혜 씨나, 서울 중구의 김형수 씨, 고진수 씨 같은 모습이 보였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 온몸이 잔뜩 눌려있는 것만 같고, 계속해서 언덕 위로 돌을 밀어 올려야 했던 시지프스와도 같다. 혁명을 위한 투쟁의 시간 한날한시에 존재하는 퍼피디아는 더없이 섹슈얼하다. 심지어는 그가 습격한 이민자 구금소의 관리를 담당하던 록조 대위(숀 펜)는 그녀에게 성적인 무엇을 느끼기까지 하며, 카메라는 시종일관 그녀의 육체미를 탐한다. 그동안 그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에 대해선 후순위로 밀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처럼 보인 게 아니라,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거나, 혹은 원하는 바를 위해 평생 소리치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도하는 멋있는 장면도 있을 수 있었겠으나, 이 영화엔 혁명의 현장에서 한발 물러난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그래서 곧장 코첼라 무대에 서도 될 법한 퍼피디아가 스크린에서 퇴장하고 그녀와 밥 사이에 난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가 등장한다. 이제 열여섯이나 열일곱이 됐을 그녀는 세르지오 카를로스(베니시오 델 토로)에게 가라데를 배우며 신체를 단련하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밥은 이제 동지들 간의 기본적인 이론도, 암구호도 잊고 살고 있지만 분명히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에단이 부르지 않아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장에 나타날 벤지와 루터 같은 존재처럼, 그들은 알게 모르게 시장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연대하고 있었다. 술과 약에 찌들어 이젠 사랑하는 딸을 구하러 가는 길에 좌초되어 경찰에 잡히며 다 끝난 것 같다가도, 그를 도와주는 동지들이 나타나는 건 감동적이다. 다시, 윌라가 세르지오에게 가라데를 배우는 건 가라데여서가 아니라 세르지오가 운영하는 체육관이어서였을 것이다.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데 캔맥주를 던져주며 괜찮다고, 다시 출발하자며 연대하는 그들에겐 끝없는 투쟁도 불가능한 미션은 아닐 것이다.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원한 삶
태양에 맡겨 뒀던 가족과 모든 분들의 사랑
밤안개 짙어진 뒤 훔치려고 모인 자경단 ...”
이쯤 갑자기 실리카겔의 노래가 떠오른 건 그저 가사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기로 했지만, 혁명가로서의 흔적들을 아예 지울 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록조가 군대를 이끌고 새로운 터전까지 들이닥쳤을 때 윌라는 밥이 자신의 친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혼란마저 겪게 된다. 사실 여기까진 감독의 이름을 가려두고 생각하면 흔하디 흔한 영화였을지 모르나, 폴 토마스 앤더슨이란 감독에겐 전혀 아니었나 보다. 단순히 많은 수의 스턴트를 쓰거나, 더 빠른 속도로 더 넓은 공간을 돌파하거나, 폭발의 규모, 발사되는 탄환의 수를 키우고 늘리는 대신, 인종, 성별, 종교, 문화 등의 요소들을 끝없이 현란하고 날카롭게 교차하거나 어긋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계속해서 키워나간다. 두 시간을 꼬박 그렇게 전개되던 영화는 마침내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애초에 이 로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공간. 정말 많은 액션씬을 봐왔지만 난생처음 보는 카체이싱.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것 같은 길 위에서 누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를 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누구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가 역시 중요하지 않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 속에, 차마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햇빛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싶은 순간, 이제는 지루해질 법도 된 순간에 관성을 유지하며 계속 출렁거리는 게 아닌, 멈춰 설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윌라를 쫓던 팀 스미스(존 후게나커)가 그랬고, 록조가 늘 해오던 대로 치킨너겟 공장을 급습하는데 그 공장의 오너가 누군지 몰랐기에 패망한다. 하지만 밥은 퍼피디아와의 혁명전선에서의 삶에서 한발 멈추고 물러선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세르지오 역시 패닉에 빠진 밥에게 파도를 상상하며 심호흡을 하라고 한 바 있었다. 지금이 몇 시냐고 묻는 물음에 계속 답을 하지 못하던 그는, “그린 에이커스, 베벌리 힐빌리스, 후터빌 정션”이라 암구호를 묻는 윌라에게 “나 아빠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라 답한다.
지금이 몇 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데, 그 시간 안에서 내가 무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일 테다. 밥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내내 윌라에게 핸드폰 소지를 금했었는데, 이젠 밥이 윌라에게 아이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술과 약에만 의존하며 살던 그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단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름을 갖는 것만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순 없었는데, 비로소 밥은 16년 만에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윌라는 흘러나오는 무전을 통해 퍼피디아를 찾으러 혁명전선으로 달려간다. 밥과 퍼피디아의 혁명에 대한 의지는 윌라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윌라는 자신처럼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로 혁명을 이루러 나온 목숨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신임할 수 있는 동지들을 만나 이들과 다시 연대할 것이다.
Green Acres, Beverly Hillbillies, and Hooterville Junction
Will no longer be so damned relevant
And women will not care if Dick finally got down with Jane
On "Search for Tomorrow" because black people
Will be in the street looking for a brighter day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원배틀애프터어나더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숀펜 #베니시오델토로 #티야나테일러 #체이스인피니티 #존후게나커 #폴토마스앤더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