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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

Mahjong, 1996

by 박종승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살아계셨다면, 2025년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세상엔 과거의 일을 스크린 위에 복원하는 능력이 대단한 이들이 많고, 백 년 뒤의 일을 상상해서 또 그것을 현재의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는 능력이 대단한 이들도 많지만, 많지만 에드워드 양은 지금의 것들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1987년 거의 40년 동안 지속된 대만의 계엄령이 종식을 맞았고, 이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기를 맞는 시기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인데, 그게 어떤 기계의 작동 원리나, 자연만물의 섭리 같은 것은 어떨지 몰라도, 사회 현상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이후 30년이 넘게 흘렀으나 여전히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그의 부재가 유난히 더 크게 느껴진다.


<마작>은 인간이 두 부류로 나뉘는 시기의 타이베이를 담고 있다. 두 부류란 것은 ‘속이는 자’와 ‘속는 자’인데, 가파르게 경제적 성장을 이룰 것이 예견되는, 이미 서부에선 그것을 역사로 체험한 외국인들마저 타이베이에 와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 수단에 있어 도덕적인 잣대는 사라진 곳이 되었기에 나온 말이다. 이제 막 십 대를 벗어나 역시 큰돈을 벌 궁리를 하는 홍어(당종성)는 “아무도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군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아버지에게 들은 말을 되뇌는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어렸던 샤오쓰(장첸)는 이제 <마작>에서 청년 홍콩(장첸)이 됐지만 여전히 혼란한, 욕망으로 가득 차 더 높이 올라갈 궁리만 하다가 지탱할 힘이 없어 곧장 무너질 것 같은, 그러니까 오랜 공사 지연으로 정부와 법적 분쟁까지 있었던 고가철도 마트라의 상태이나, 완공 이후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서의 마트라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이름은 <마작>이나 영화 안에서 딱히 마작이 크게 다뤄지진 않는다. 굳이 언급하자면 룬룬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와 지인들이 마작 같은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얼핏 보인다는 정도인데, 그곳은 미국의 성조기가 크게 걸려있으며, 비틀스, 제임스 딘의 사진 등으로 미국적인 요소가 가득한데, 어떤 의미로든 미국이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영향이 가득한 상황, 또 그런 부모님 세대 이후 격변하는 시기에 마작의 플레이어로 던져진 지금의 세대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판돈은 삶이자 생존 그 자체일 것일 테고. 반면 후반부 마르트(비르지니 르도엥)와 재회하는 곳은 카페 하드록, 레스토랑, 영국인 디자이너 마커스가 인테리어 한 제이(자오 더)의 미용실과 대조되는 대만의 야시장이었다. 이는 에드워드 양이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일 것이다.


홍어와 홍콩, 소부처(왕계찬) 그리고 룬룬(가우륜)이 모인 조직은 키스를 재수 없는 행위로 여겨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돈 많은 여자를 유혹해 사기를 치려고 섹스는 하지만 키스는 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마르트와 마커스는 연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마르트는 자신을 사랑하냐며 마커스에게 확신을 요구한다. 홍콩과 일행이 꼬셨던 안젤라(오가려) 역시 홍콩에게 자신을 사랑하냐며 연신 되묻는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기꺼이 거짓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본능적인 차원에 그치는 삽입까지도 할 수 있겠으나, 어떤 말을 내뱉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마치 홍어가 총으로 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처럼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본 것 같다. 룬룬과 마르트는 어렵게 재회해 하고자 하는 말이 많았겠지만 키스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서 서툰 것일 수도 있겠으나 마치 상대방의 입술을, 입을 과격하리만치 탐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상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든 그것들을 모두, 또 홍어와 소부처의 말을 빌려 기꺼이 속는 자가 되어 고난길이 펼쳐질지라도 진짜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을 삼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낙천적이라곤 볼 수 없을 것도 같다. 시장에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데, 앞서 홍어의 장면에서도 빨갛거나 초록의 색이 감돌았는데, 푸름이 크게 다른 분위기로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헤쳐나가길 바라지만, 그것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불안한 건 떨쳐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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