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nobyl, 2019
“What is the cost of lies?” 1화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사내의 “거짓의 대가는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거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누가 영웅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원흉이 누구냐는 거다.” 1988년 4월 26일, 사내는 말을 마치고 녹음기에서 테이프를 꺼내, 같은 내용의 방대한 이야기가 담겼을 다른 테이프들과 함께 챙겨 들고 선 집을 나선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사내는 주위를 살핀다. 건너편엔 사내를 감시하는 듯한 이가 보였다. 사내는 음식물 쓰레기를 담은 통에 테이프들을 담아 와선 건물 한편에 숨긴다. 그리고 사내는 집에 들어와 기르던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미리 매달아두었던 줄에 목을 맨다. 시작부터 드러난 많은 의문들은, 동시에 누군가가 감추려 하는 사실들임을 암시한다.
이 드라마는 체르노빌이란 제목만 보고서도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루고 있다. <체르노빌>은 원전 폭발이란 재난을 다루고 있으나 그동안 봐왔던 다른 재난 영화들과는 다르다. 우선 아주 일차원적으로, 거세게 몰려오는 쓰나미나 태풍, 지진, 화산 폭발처럼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와 그것을 실은 바람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극 중 표현을 빌려 몇 억 개의 총알이 되어 날아오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피폭됐는지 알 수 없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지고 나서야 이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난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소리에 잠에서 깬 사람들이 몰려나와 철교에서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을 마치 불꽃놀이처럼 바라보는, 먼 곳까지 날아온 재가 마치 눈처럼 표현된 장면은 그래서 참담하기만 하다.
<체르노빌>은 거기서 더 나아가, 재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적인 인물을 등장시키지도 않고, 재난으로 입은 피해를 참혹하게 카메라에 담지도 않는다. 오프닝에서 그 의도를 확실히 전달한 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소련 장관회의 부의장이자 연료 동력부 장관 보리스 셰르비나(스텔란 스카스가드), 모스크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수석부위원장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라는 두 인물을 필두로 이야기가 전개되긴 하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전문가들끼리 모인 마당에 관객에게 자신의 친절함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둘과 다수의 조력자들이 내놓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또 다른 다수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피해가 특정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들이 마치 재난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자 투입시킨 로봇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작동이 멈추자(dead), ‘바이오 로봇’이라며 그 역할을 할 사람들을 사지로 보낸다거나, 방사능에 오염된 먼지가 날린다며 선풍기를 제공해주지 않자 땅굴을 파던 광부들은 신발과 모자를 제외한 모두 피복을 벗어던지고, 장관에게 일주일 내에 죽을 게 분명하지만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세 명을 뽑는 장면들은 그들의 영웅적 면모가 멋있다거나, 그들의 희생이 숭고하다거나, 그 결정이 주는 딜레마보다는 단순히 처참할 뿐이다.
정주행을 마쳤으나 달라질 건 없다.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어버린 체르노빌, 그리고 그 비극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되풀이됐다. 강을 타고, 바닷물을 타고, 일본 바다를 건너온 태풍을 타고서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내가 방사선에 노출됐을지 알 수 없다. 무기력하기만 하고, 절망만이 가득하다. 복중 태아가 산모 대신 죽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더 나를 짓누르는 건, 그러한 역사를 감추려고만 했던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비단 체르노빌에만 해당하는가? “진실이 불쾌할 때, 진실의 존재를 잊을 때까지 거짓말을 반복하지만, 그 진실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의 모든 거짓말은 진실에게 빚을 지고, 언젠가 그 빚을 갚게 된다.”는 발레리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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