恐怖分子, The Terroriser, 1986
영화가 시작하니 새벽녘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경찰차의 모습이 보인다. 숏이 바뀌고, 어두운 방 안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의 포스터가 클로즈업된다. 미국의 젊은 부부와 중년의 부부가 ‘주인 욕하기’, ‘손님 욕하기’, ‘아이 키우기’라는 상황극 게임을 하는데, 인물들은 허구의 상황에 몰입하다가 이내 속에 담아뒀던 감정이나 비밀을 폭로하며 결국엔 부부 사이를 지탱하던 아이가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임을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는 실제와 환상 사이의 경계를 말하고 있었다. <공포분자>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맞닿아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다. 연구원 남편과 소설가 아내라던가, 카메라로 사실을 찍는 남자와 문학을 읽는 여자처럼 인물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러닝타임 내내 따라간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오프닝, 포스터 아래 스탠드를 켜놓고 밤새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자고 있던 남자가 있다. 날이 밝자 남자는 창밖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아마도)경찰차를 보더니 카메라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이어지는 숏에선 골목길에 웬 사내가 쓰러져있다. 인근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이 있고 빨래소리는 숏이 바뀌어도 유지된다. 다시 숏이 바뀌니 쓰러져있던 사내는 사라지고, 총소리가 들리더니 또 웬 사내가 건너편 건물로 뛰어든다. 어떻게 존재했던 이가 사라질 수 있는가? 빨래를 하던 여인이 총소리에도 놀라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다시,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지나가는 걸 카메라가 쫓는다. 경찰차가 지나간 어떤 아파트일까, 소파에 누워 자는 건지 아님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설가 주위펑(무건인)이 보인다. 소설을 쓰려는데 도무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남편 리리종(금사걸)은 왜 그러냐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 집필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공포분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지만, 이 숏에서의 리리종은 그야말로 무표정이다. 아내를 정말 이해하고 위하는 말을 하는 건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뱉는 건지 알 수 없다.
다시 카메라는 오프닝의 골목길로 넘어온다. 누군가가 건물 안에서 창밖으로 손만 내밀어 총을 쏘는 숏이 보이고, 바로 다음 숏에 사라졌던 사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쓰러져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건물로 뛰어들었던 사내와 비슷한 인상착의(안경, 신발 착용의 여부만 다름)의 사내가 등장해 그를 데리고 가려는데 또 한 번 총이 발포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사이렌을 시끄럽게 울려대던 경찰차가 비로소 이 골목에 다다라서야 그 소리를 멈춘다. 불법 도박장이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총격까지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게 된 것이다. 사이렌과 총소리가 멎자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던 남자가 이 모습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리리종의 친구이자 경찰 간부(고보명)가 그것을 보고 손짓을 한다. 저리 가라고. 건물 한편에 숨어서 촬영하던 남자는 거리 한복판으로 나와 셔터를 누른다. 사내가 카메라로 찍은 각각의 사진들을 이러한 이야기로 엮어내고 있는 것인가?
다시, 셔터가 누르기 전에 숏은 이미 전환된다. 도박장 내부, 사람도 없고 바람도 들지 않는 곳에 테이블이 보인다. 남자가 누른 셔터는 마치 슬레이트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던 텅 빈 캔 두 개가 떨어진다. 이유를 모르겠다.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에 유일한 단서는 바로 카메라의 셔터뿐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어떤 힘을 발산해 캔이 떨어지게끔 한 것. 그러나 셔터 소리가 들리고 5초가 지나서야 캔이 떨어지기에 생각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도박장에 숨어 있던 사내와 여자가 뛰어내린다. 그런데 이 장면은 무음처리된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더라도 건물에서 뛰어내리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는데. 사내는 경찰들에게 바로 붙잡히지만 여자는 몸을 숨기는 데에 성공한다. 비가 오진 않지만 건물 벽에 달린 배관을 넘어 물이 쏟아진다. 좀 전에 보였던 빨래로 인한 것일까. 카메라는 분명한 의도를 취한다. 떨어지는 물의 이미지에 햇빛이 비쳐 마치 신기루처럼, 어떠한 마법처럼 반짝인다.
다리를 절며 어디론가 향하던 여자는 이내 대로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출근하던 리리 종이 그곳을 지나간다. 리리종뿐 아니라 차 한 대와, 오토바이 한 대가 또 지나간다. 여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유가 뭘까? 그렇게 쓰러져간 이들이 너무 많아 일상처럼 여겨지는 걸까? 다시 다음 숏, 무장한 경찰들이 건물로 진입한다. 총소리가 들리고 숏이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주위펑의 내래이션이 들린다.
“봄의 첫날 그 일은 벌어졌다. 또 다른 계절이 와도 옛날이 되풀이된다는 것 외에 달라진 건 없다. 올봄도 똑같다. 이들 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앞선 장면이 모두 주위펑의 소설이었단 말인가? 아니라면, 경찰차로 시작해 모든 인물을 거쳐 갔으니 주위펑의 차례가 됐을 뿐인가? 주위펑은 부부관계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쓰고 있었다. “이들 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후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숏이 전환된다. 다시, 주위펑의 소설이 이미지로 보이는 것인가? 아니라면, 별개의 사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영화의 초반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삶이 사실 하나의 띠로 연결되어 있고, 도시가 그러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개개인의 작은 차이들이 있지만, 결국 다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 22분 30초의 러닝타임이 흐르고, 리리 종이 소설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말했던 주위펑의 모습이 다시 한번 반복된다. 주위펑이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소설 집필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겠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진 않다. 입고 있는 의상도 달라졌고, 손목엔 없던 시계도 채워져 있다. 주위펑은 그간 썼던 원고를 만년필로 그어 찢어버린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글쓰기 기술이나 나나 친구들한테 있었던 일을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난 등장인물, 줄거리와 주변에서 있었던 얘기를 공책에 썼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건 무의미해. 나의 감정을 소진한 기분이야. 지난 30년 동안 너무 빨리 소진했어.”
자신이 꿈꾸던 소설의 세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자신의 현실을 반영한 허구의 세계의 공허함을 느껴버린 것일까. 소재라곤 부부관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던 그녀의 소설을 리리종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또 누군가는 읽었다고 한들 그것을 온전히 허구로만 생각한다. 주위펑은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무뎌짐을 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영화에서 주위펑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인물은 카메라를 든 사내다. 온전히 현실 세계에 있는 것을 카메라에 담지만, 그것을 찍는 사람의 의도와 어떤 프레임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 다른 허구의 것이 된다. 앞서 언급했듯 별개의 사진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까. 주위펑처럼 사내도 자신이 꿈꾸던 세계의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사내는 우연히 찍게 된 여자에게 자신만의 환상을 투영한다. 사내는 여자를 처음 만났던 도박장을 임대해 암실로 만든 뒤 그녀의 사진으로 벽을 도배한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그 공간은 사내가 품었던 환상의 폐쇄성을 암시한다. 결코 현실에는 반영될 수 없는, 오로지 그곳에서만 작동하는 세계. 여자는 그렇게 붙어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자마자 기절하고 만다.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도플갱어를 만나기라도 하듯 현실과 환상의 충돌을 감당하지 못한다. 사내는 자신이 가졌던 환상을 유지한 채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그가 잠든 사이 그의 카메라를 훔쳐 달아날 궁리를 한다. 타이베이를 떠나 가오슝으로 갈 자금을 마련하려던 것인데, 그러나 결국 여자는 카메라를 사내에게 돌려준다. 카메라를 팔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자신과 함께 도박장에서 도주하다 잡힌 사내가 출소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 원인이야 어쨌든 여자의 마음을 안 사내는 빛을 차단하던 가림막을 떼어낸다. 방으로 바람이 불어 드니 사진이 펄럭이며 그녀의 얼굴 또한 조각조각 흩어지고야 만다. 주위펑은 스스로 자신의 원고를 찢었고, 사내는 자신의 환상이 조각나도록 바람을 들였다.
사내는 그 길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화면은 카메라의 시점을 취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찍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숏, 카메라는 스트랩에 아무렇게나 매달려있을 뿐 사내는 정작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있다. 이어지는 숏, 대로변에 쓰러져있는 그녀의 사진을 클로즈업한다. 그의 환상은 사진 속 모습처럼 무너지고야 만 것인가, 아님 여전히 그 환상에 머물러있는 것인가.
사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영화를 찍고, 소설을 쓰고,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모두 현실을 반영해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도구들이다. <공포분자>에서 소설과 사진의 세계는 찢기고, 무너졌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가.
이제 그간 도구처럼만 언급하던 리리종의 차례인가. 사실 <공포분자>는 의도적으로 리리종의 이름만을 부른다. 카메라를 든 사내, 그의 여자 친구, 여자 따위의 호칭밖에 붙일 수 없고, 그나마 주위펑의 이름 역시 누가 불러주는 것이 아닌 전화번호부에서 주위펑이란 세 글자가 카메라에 담겼을 뿐이다. 리리종의 이름만이 유일하게 호명되고, 언급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이들과는 다르게 안정적인 현실에 머물러 있는 차이밖엔 발견할 수 없는데, 결국에 그는 사망에 이른다.
리리종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뒤쫓는다. 그리곤 친구인 경찰 간부와 오랜만에 만나선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을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리리종은 극 중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는데, 유독 이 장면에선 밝게 웃는다. 카메라는 아주 서서히 다가가는데 어쩐지 그는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친구와 술을 마시다 잠에 든다. 아침이 밝고 눈을 뜬 그는 눈물을 흘린다. 이어지는 숏에서 자신을 몰아낸 부장이 누군가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다. 이어지는 숏에서 경찰 간부는 잠에서 깨 자신의 총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다음 숏, 리리종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한 호텔방으로 향해 내연남을 쏴 죽인다. 주위펑 역시 쏘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거울을 쏠뿐이다. 리리종은 살인 이후 도심을 걷는데, 그의 뒤로 영화관의 대형 포스터들이 보인다. 다양한 장르의 상업영화들이 있으나, 리리 종이 거니는 곳의 배경에 불과하다. 그렇게 어느 호텔방에 숨어있는 것을 친구이자 경찰 간부가 들어가려고 하니 총성이 들리며 하얀 벽에 핏자국이 퍼진다.
그러나 숏이 전환되고, 총소리에 잠들어있던 친구와 주위펑이 깬다. 경찰 간부는 그대로 욕실에 가보니 자신의 총으로 자살한 리리종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벽에 퍼진 핏자국까지. 앞선 숏은 호텔방의 것이 아니라, 이 욕실에서의 것이었다. 한편 잠에서 깬 주위펑은 헛구역질을 한다. 그리고 옆엔 내연남이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두 개의 결말이 겹쳐져있다. 첫 번째의 것은 주위펑의 소설이 이미지화된 것일 테다. 자신의 연구원 생활을 파탄내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파탄내고, 자신의 인생을 파국으로 내몬 이들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서사. 리리 종이 지나갔던 그 대형 포스터들의 본편처럼 흔한 상업영화라면 그런 결말을 취했을 수 있다. 주위펑의 소설대로 영화가 끝나는 건 소설, 그러니까 허구이자 환상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의 것이겠다. 그러나 앞서 그러한 세계들이 다 무너졌음을 봐왔다.
그래서 그 환상의 세계의 종말과 함께 리리종의 자살 시퀀스를 총으로 연결 지은 게 아닐까. 다시, 앞서 언급했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힘을 가진다고 했다. 영화든 소설이든 사진이든,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는 그 자체로 어떤 힘을 지닌다. 그러나 영화 속 소설을 찢고, 사진을 조각내고, 허구의 세계를 총격과 피로 마무리한 것은 그것에 대한 경계이자 지적이 아닐까. 주위펑의 헛구역질은 내연남과의 임신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앞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언급한 바 있다.
식민지 해방 이후 30년 넘게 지속된 계엄령 아래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한 발포가 아닐까. 대만과 대만 영화사에 대한 무지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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