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calogue I , 1989
보는 내내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이 떠올랐다. 신을 믿지 않던 자가 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모양새가 그러했다.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치는 교수 크지쉬토프(헨릭 바라노브스키)에게는 초등생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밍을 해내는 영특한 아들 파벨(보이체크 클라타)이 있다. 겨울의 어느 날, 마을에 있는 연못이 얼면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크지쉬토프는 기상청에 연락을 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연못이 얼마나 얼었을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얼었는지 계산해 스케이트를 타도 좋다고 말한다. 마치 레이저처럼 느껴지는 컴퓨터의 녹색 화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9000을 보는 것 같았다. 복선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 화면이 무서웠다. 그렇게 집을 나선 파벨은 다시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크지쉬토프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사이렌 소리에 반응하는 것, 점차 겁에 질려가는 것만 보일 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계산한 것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 것인가?
“세상 모든 일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저기 저 햇빛 한 조각에도 우리 주님의 뜻이 숨어있다고, 세상에 주님의 뜻 아닌 게 없어요.”라는 동네 사람의 말에 “여기 뭐가 있어요? 그냥 햇빛이에요, 햇빛.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답하던 신애(전도연)는,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하게 된다. 그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햇빛마저 주님의 뜻이라는 말에 콧방귀를 뀌던 신애가 교회에 가서 대성통곡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감정이었을까. 남편을 잃었는데 아들마저 잃어서? 그것만으로도 전도연의 연기는 대단한 것이지만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창동 감독님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신애의 모습 대신, 마당 한 구석에 내리쬐는 햇빛을 담았기 때문이다.
크지쉬토프가 흘리는 눈물은 파벨을 잃었기 때문인가.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크지쉬토프는 나아가 교회의 제단을 밀어 쓰러뜨린다. 제단에 있던 불붙은 초들이 쓰러지며 촛농이 흐른다. 그리고 그 촛농은 제단 너머에 있던 마리아의 초상으로 흐른다. 마리아의 눈물로서. 크지쉬토프는 신애와 많이 닮아있다. 신애는 교회의 장로와 드라이브를 가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여? 잘 보고 있냐구. 보이냐구.”라고 소리 없는 속삭임을 한다. 크지쉬토프는 제단을 쓰러뜨린다. 신애는 종찬(송강호)을 따라 들어간 미용실에서 하필 정아(송미림)를 만난다. 왜 하필 오늘, 하필 이 집이냐며 종찬을, 하늘을 탓한다. 크지쉬토프는 본인이 직접 계산해 안전하리라 확신했던 마을의 연못에 파벨을 보냈다. 파벨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다른 곳으로 놀러 간 아이들을 무사했다. 왜 하필 파벨이 연못에 빠지게 됐을까.
크지쉬토프 부자가 사용하던 컴퓨터가 HAL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컴퓨터는 “명령어를 입력하세요.”라는 멘트 대신 “ARE YOU READY?"라고 말한다. 말하고 있다. 십계명을 다룬 영화 <데칼로그>, 그리고 그 첫 번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파벨은, 신애는 다른 신은커녕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들의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에 신의 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느냐, 부정하냐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데칼로그 1>이 파벨 부자에 대해서만 다루는가? <밀양>이 신애에 대해서만 다루는가? 파벨 부자 곁엔 처음부터 신의 존재를 믿었던 고모가 있었고, 신애의 곁에는 다수의 신앙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신을 인정하게 됐는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있어 파벨 부자와 신애는 부러운 대상일 것이다. 일생을 살며 매주 교회를 가도 신의 계시를 체험하게 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데칼로그>는, <밀양>의 러닝타임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맺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ARE YOU READY?”로 대표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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