寝ても覚めても, Asako I & II, 2018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꿈을 꾸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는, 게다가 아사코 역을 연기한 카라타 에리카의 분위기와 미미 역을 연기한 이연희의 분위기가 비슷해 보여서 <아사코>와 <M>(2007)이 어딘가 닮은 것 같았다. <아사코>는 운명이니, 꿈이니 추상적인 개념들을 언급하면서도 전혀 추상적이지 않게, 철저하게 계산된 ‘거리’들이 이미지로 표현된 지점들이 있었다. 아사코가 고쵸 시게오의 사진전 <SELF AND OTHERS>에 갔다가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따라가는 건지, 우연히 가는 방향이 같은 건지 모를 장면에서 둘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후반부 고양이를 찾던 아사코에게 포기하고 돌아가라던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쫓아갈 때에도 좀처럼 좁혀지거나 멀어지지 않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다. 영화가 시작하며 보이는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강은 강을 이루는 작은 물방울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흘러가고 있기에 작동한다. 이 거리를 어떻게든 풀어내지 못하면 <아사코>에 대해 무엇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4월의 관람 이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사코>는 120분의 러닝타임을 두 번, 혹은 세 번 나란히 병치시켜놓고 봐야 할 것 같은 영화다. 한 번 보고서는, <M>에서 미미도 그랬지만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아사코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온 사진전 장면에서 뒤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바쿠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짓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없다. 아사코에게 바쿠가 운명의 상대라서, 그것을 알아챈 아사코가 미소를 보인 건가? 꿈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아니라면, 단순히 그의 콧노래에 흥이 나서였나?
영화에는 계속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들이 있고, 그 일정한 거리를 혼잡하게 섞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아사코와 바쿠의 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깨는 폭죽이 있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있다면 그것을 엎어버리는 지진해일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바쿠의 말을 빌려 운명이라고 해버리면 편할 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는 오기가 발동해버렸다. 오카자키(와타나베 다이치)가 루게릭병에 걸리고, 토호쿠 지역이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것이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긴 싫었다. 아사코가 료헤이에게서 상처를 회복하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게 바쿠가 다시 나타났고, 택시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사코를 쫓아가기엔 료헤이의 신체는 그걸 쫓는 게 불가능하다. 삶에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인해서 유지되는 거리는 운명이 아닌 인적요소에 의해, 인물이 지닌 어떤 의도에 의해 좁혀지거나 멀어지고, 혹은 뒤섞여버린다.
<아사코>의 영어 버전 제목은 <Asako I & II>이다. 행인 1, 행인 2처럼 아사코에게 두 개의 인격을 부여한 것인가?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쿠와 료헤이를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둘로 나눠지고 있음인데 제목은 왜 아사코인가? 나는 아사코에게 펼쳐지는 삶들(I)에, 다른 무엇이 침입할 때(II)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홀로 있던 아사코(I)의 앞에 바쿠가 나타났고(II), 그런 아사코와 바쿠(I)의 관계에 료헤이가 나타난다(II). 아사코가 료헤이에게서 바쿠를 보지 못하고(혹은 보지 않고) 있을 때(I), 하루요(이토 사이리)가 나타나 바쿠의 존재를 다시 일깨워준다(II). 료헤이는 아사코가 자신에게서 바쿠의 모습을 본 것을 알고 있었고, 줄곧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무서워하고 있었으나(I), 바쿠가 둘의 앞에 나타나며 현실화된다(II).
이 거리들과 그것의 뒤섞임의 나열들을 보여준 후에 기묘한 장면이 등장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고양이를 찾고 있던 아사코가 료헤이를 뒤쫓는 장면이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익스트림 롱숏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장면엔 영화에서 표현했던 거리와 관련한 장치들이 모두 들어있다. 사진전을 나와 바쿠와 아사코의 일정했던 거리가 료헤이와 아사코의 것으로 반복된다. 둘 중 하나가 달리는 것을 포기하면 좁혀지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일정하게 유지된다. 잔잔하게 흘러갔던 강물은 구름이 되어 비로 다시 화면에 등장했고, 바람이 부는 방향과 구름이 걷히며 드는 햇빛의 방향이 두 인물이 달리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사코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연기한 두 캐릭터를 쫓고 있는 건 같지만, 같은 의미의 되풀이는 아니다. 초반의 바쿠와의 장면에선 바쿠를 쫓는 것인지, 단순히 동선이 겹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며, 둘이 마주하게 된 것도 둘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맑은 하늘 아래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있을 뿐이었고, 내리쬐는 햇빛을 막을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 료헤이와의 것에선 아사코는 분명히 료헤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흐르는 강물은, 바람은, 햇빛은 자연의 섭리대로 그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다시, 이 장면에 앞서 고양이를 찾던 아사코는 오래전 바쿠, 하루요와 함께 했던 친구 오카자키를 찾는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일 테지만 루게릭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오카자키 앞에 나타난 그녀는 오래 간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그렇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하나 그리고 둘>(2000)에서 양양(조나단 창)이 할머니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역시 두 장면이 똑같은 반복은 아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미 아사코와 그녀의 주변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모두 보았기 때문에 굳이 아사코의 대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그녀에게 내줄 녹차를 준비하는 오카자키의 어머니 에이코(타나카 미사코)에게 잠시 시선을 두는 것을 택한다. 그녀가 녹차를 내어오니 아사코는 이미 얘기를 마치고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사코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며, “그것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때론 뭐가 옳은 건지 헷갈릴 때도 있는 거니까”라며 아사코를 위로하던 에이코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면 소중하게 대해주면 되잖아”라고 덧붙이며, 자신의 비밀을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말해왔던 젊은 시절의 사랑 얘기가 사실은 오카자키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대상이었음을. 오래 간 그녀의 사랑을 포장하고 있던 비밀과 거짓이 걷어지는 순간이었다. 오카자키네 집 마당에 널려있던 빨래는 앞서 한 번 더 등장했었다. 바쿠와 아사코가 오카자키네 집에 가는 길에 오토바이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웃던, 오카자키가 둘에게 흰 이불을 던져 그들의 사랑을 하얀 포장지로 덮어버렸던 장면이 있었다. 다시 후반부 비가 내리자 에이코는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며 아사코와 빨래를 걷는다.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돌아가 자신이 걸치고 있던 비에 젖은 흰 옷을 벗는다. 료헤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둘러싸고 있던 비밀을, 거짓을 벗어던지는 순간일 것이다. 좀처럼 좁혀질 줄 모르던 거리가 좁혀지는,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료헤이와 함께 오사카로 이사를 준비하던 도중 바쿠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하던 아사코는 접시를 깨뜨리고 만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료헤이의 후배 쿠시하시(세토 코지)는 “형태가 있는 물건은 모두 깨지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게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거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도 어떤 형태가 있다면, 그래서 흰 이불과 흰 옷으로, 비밀과 거짓으로 덮어놓을 수 있었던 거라면 어떨까. <아사코>는 대사도 중요하겠지만,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영화다. 아사코와 바쿠의 첫 만남에선 통성명을 다 마치지기도 전에 키스를 했고, 아사코는 바쿠인 줄 착각하곤 료헤이의 뺨을 어루만진다. 료헤이는 “나를 제대로 봐줘요. 난 당신이 좋아요.”라며 고백하며, 그 앞에서 바쿠를 떠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사코의 뺨을 어루만진다. 아사코는 그런 료헤이에게 어떤 대답을 하는 대신 역시 뺨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다시, 오사카의 집에 아사코를 들인 료헤이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젖은 머리를 닦은 수건을 아사코에게 던진다. 역시 아사코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입고 있던 흰 옷을 벗어선 료헤이가 건넨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자신을 버리고 그렇게 가버린 그녀에게 어떠한 원망을 하는 대신 말이다.
마침내 그 거리를 좁히고 나란히 선 둘 앞에 불신의 관계가 시작된다.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더 이상 기대지 않을게.”라고 말한다. 료헤이는 그것에 대한 답으로 “난 아마도 평생 널 못 믿을 거야.”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빗물로 인해 불어난 강물을 담는다. 비가 더 내리면 언제라도 범람해 그들을 덮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강물을. 카메라 너머의 그 강물을 바라보는 아사코와 료헤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바쿠는 곰의 몸, 코끼리의 코, 멧돼지의 어금니, 코뿔소의 눈을 지닌 일본의 전설 속 동물이다. 바쿠는 꿈을 먹는 존재로 불린다. 반면, 아사코는 아침을 뜻한다. 바쿠는 오로라로 상징되는 꿈속에 머물러있다면, 아사코는 기어코 높은 방파제 위로 올라가서 현실을 보는 인물이다. 재난 이후의 바다, 더러운 바다, 바다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다. 아사코는 수동적으로 오로라를 기다리는 대신 능동적으로 바다를 보는 것을 선택한다. 재난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줄 아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인물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강을 바라보는 료헤이와 아사코의 생각이 달랐던 것처럼.
아사코는 꿈을 꾼 것이든, 영화적인 장치로든, 그리고 바쿠와 료헤이라는 같지만 다른 인물을 통해 같은 일을 두 번 경험하게 된다. 현재의 시점에서도 볼 수 있고, 과거로 되돌아갔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일주일 간 네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아사코>는 아사코가 겪은 일들을 시간 순으로 엮어놓았다. 앞서도 언급했듯 그렇게 반복해서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장면들도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재관람을 하도록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 됐든 지난 일을 되돌아봤을 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들은 우리의 삶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반복해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로 반복할 수 없다. <아사코>는 동일본 대지진을 다루고 있다. 바쿠는 재난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갑자기 사라졌다. 아사코와 료헤이는 재난의 피해지역인 센다이 지역주민들을 돕는다. 아사코는 공원에서 사라졌던 바쿠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곤 곧장 달려간다. 그러나 아사코는 바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바쿠가 타있을 거란 차가 떠나는 뒷모습에 손을 흔든다. 웃으면서 인사한다. 왜 떠나갔느냐고 책망하는 대신 잘 가라고 말이다. 언제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사코가 바쿠를 보내고 똑같은 외모의 료헤이를 택한 것에서 영화는 참사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아사코는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한다. 아사코가 잠에서 깨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지난 일이 꿈만 같은 것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다. 아사코가 바쿠와 같은 모습이라서 료헤이를 사랑하게 됐듯,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삶은, 지역은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로는 어찌하지 못했던 상황을 뒤로하고, 주체적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아사코는 바쿠는 오르지 않는 둑을 올라, 바쿠는 보지 않는 바다를 본다. 센다이 동부 해안의 진앙을 직시한다. 언제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것을 방파제로, 둑으로 막아놓은 것을 올라서 보고야마는 것이다. 아사코는 바다를 보면서 꿈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료헤이와 함께 빗물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본다. 우리의 삶에도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 있다.
아사코와 료헤이의 마지막 시선은 무얼 의미할까. 그 불안하고 무서운 현실과 미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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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강이군."
"그래도,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