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The Man Standing Next, 2018

by 박종승

<그때 그사람들>(2005)과의 비교를 피할 수 있을까 싶다. <남산의 부장들>의 114분을 지나온 소감이라면, ‘만화 박정희’를 보는 것이, 단 두 권짜리 만화책을 보는 것이 보다 더 값지겠다는 것이다. 우민호 감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3년부터 1979년까지의 긴 시간을 두 시간 내외의 상업영화로 만드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거나, 나름대로 영리한 선택을 강구한 것이 79년 10월 26일 사건 이전의 40일 만을 다룬 것이다. <그때 그사람들>도 그렇고 <남산의 부장들>도 그렇고 결국 클라이막스는 10월 26일에 있다. 그날까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서사를 어떻게 구축해나갈 것인가가 관건이겠다.


영화의 제목은 <남산의 부장들>이다. 대통령과, 경호실장, 보안사령관, 참모총장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부장의 이름은 현 중앙 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이병헌)과 전 중앙 정보부장 박용각/김형욱(곽도원) 둘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영화의 결말로도 이어진다. 영화는 사건 당일 이전 40일을 김규평이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을 엮었다. 그러나 별로 영리한 선택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감독 개인이 그 인물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고, 영화적으로 그것에 대한 서사를 깔지 않고, 다짜고짜 1979년 9월 20일로 점프하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의도적으로 정치/역사적인 것들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는 생각이 닿지 않는다.


<내부자들> 이후 우민호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이병헌 배우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김규평에 대해, 그가 종국에 취한 선택에 대해 충분히 납득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얼굴에서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지만 그는 실제 50세다. 박통과 혁명을 함께한 그는 아무리 어리게 잡아도, 스무 살에 군에 입대해 불혹의 나이에 가까웠을 인물이다. 그 오랜 세월 박통의 곁을 지키며, 그리고 그 시기에 가졌을 고민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병헌 못지않게,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박통은 18년이나 지속한 장기집권의 마지막을 본인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다양한 면에서의 딜레마를 표현해낸다. 큰 움직임이나 표정 변화 없이 그것을 해내는 배우의 능력은 대단하며, 제목에서 언급하는 어느 부장들보다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성민 배우의 연기를 차치하고서 한 인물이 몇 명이든 탱크로 밀어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없으니 그 좋은 연기를 보는 재미도 덜하다. 이건 감독이 개인으로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소극적인 평가라기 보단, 연출자로서 가지는 캐릭터 설정의 빈약함인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는 감독으로서 무얼 했단 말인가. 의자에 앉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라고 했을 것만 같다. 조명의 쓰임에 있어 명암의 대비를 살리는 것 정도를 제외하곤 클로즈업을 쓸 수 있는 대로 사용해 배우들의 연기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것이 극에 달했던 <마약왕>(2017)에서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으니. 청와대나 중정, 궁정동의 안가 등 주요 무대가 아닌 해외 로케이션처럼 비중이 크지 않은 장면들에선 그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텅 빈 느낌마저 들었다. 연출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카메라로 다 담는다. 텅 빈 이미지들이 있는가 하면, 사유할 공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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