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에게>

For Sama, 2019

by 박종승


영화를 찍고 있는, 아니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감독의 1인칭 시점은 관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영화가 시작하면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거리는 무의미해진다. 나의 경우에 상영관 내의 불이 꺼지고 그 거리가 무의미해지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 손에 콜라가 됐든, 커피가 됐든, 핸드폰이 됐든, 펜이 됐든 관객은 모두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와드가 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폭격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난 너무 놀랐다. ‘그러니까 이게 연출된 특수효과가 아니란 거지?’라며. 의문이 들었으나 그런 의문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와드는 그럴 정신이나 있었을까. “사마 누가 데리고 있어?” 그녀의 첫 대사는 이랬다. 자신의 품에 없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 폭격으로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자식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자연한 의식의 흐름이었으리라. 그러나 사마가 어디에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바로 등장하지 않자. 또 ‘어쩌지? 사마는 어디에 있지? 포스터에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달라고 쓰여있었는데, 벌써?’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토록 단숨에, 깊게 몰입시킨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그러나 사마는 무사했고 이런 나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건물 지하에 옹기종기 모인 그들은 농담을 건넨다. 사마가 물고 있던 젖병을 내동댕이치자, “화내는 거야. 태어나서 본 게 전쟁밖에 없잖아.”라고. 수년간 지속된 폭격에 어느 정도 무뎌진 것이리라, 인간은 적응을 하는 동물 이랬다고 그런 상황에도 적응을 한 것이리라. 심지어는 그 어린 사마마저, 전쟁통이란 상황에 적응을 했는지 어지간한 폭격 소리에는 울지도 않더라.


<택시 운전사>(2017)를 만들며, 왜 군인들이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남산의 부장들>(2020)을 만들며, 구태여 KCIA라는 중앙 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총살하는 데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배경지식으로, 아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니. 반면 시리아 국민들에게 있어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린 알레포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필요할까. 와드는 그 의도를 분명히 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시리아 국민이나, 해외의 누군가가 아닌 사마를 위해 만든 영화다. 사마에게 그 전쟁의 역사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기에, 관련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외국인 관객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들이 있겠지만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네마 베리떼? 뭐 그런 단어가 떠올랐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항상 글의 말미에 영화 제목-배우, 감독의 이름을 차례로 적곤 하는데, 이 영화는 감독이 두 명이길래, 그것도 함자가 아닌 미국인이기에 조금 더 찾아보고 아래로는 수정을 했다.)

이따금씩 영화라는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도 나온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황급히 향하느라, 자신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달리느라 무엇을 찍는지 조차 모를 만큼 거칠게 흔들리는 장면도 있고, 어떤 인물을 담는데 초점이 엉뚱한 곳에 가있기도 한다. 하다못해 촬영장비가 달라져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차이마저 그대로 다 보인다. 와드라고 그것을 몰랐을까. 후에 편집을 하면서는 보지 못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와드는 이 모든 기록을 모아서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파일로든, 테이프로든 언제 폭격으로 기록이 손실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날그날 촬영분을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전송했으리라. 그리고 그 전송된 영상을 모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으리라.


와드는 말한다. “나의 도시 알레포. 사마, 이 곳에서 네가 첫울음을 터뜨렸단다. 이런 세상에서 눈 뜨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내래이션. 영상을 촬영하며 삽인 된 목소리가 아닌 후반 작업에서 삽입된 내래이션에서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친구였던(?) 함자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사이드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장면이 있다. 시네마 베리떼라는 말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그것의 완벽한 형태가 아닐까.


#사마에게 #와드알카팁 #사마알카팁 #에드워드와츠 #영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산의 부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