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 앤 글로리>

Dolor y gloria, Pain and Glory, 2019

by 박종승

그런 말이 있다. 사람 고쳐서 쓰는 거 아니라고.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아닐 수도 있을까. 영화가 시작하니 수영장에 잠수를 하곤 죽은 건지, 명상을 하는 건지 구분이 쉽지 않은 모습의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보인다. 그의 척추를 따라 긴 흉터가 보이는데, 물과 살바도르의 이미지는 과거 회상으로 이어진다. 그의 어린 시절, 어느새 어머니 연기를 함에도 어색함이 없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분한 하신타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빨래를 하고 있는 그녀의 등에 어린 살바도르가 업혀있으니 엄마 허리 아프니까 내려오라고 한다. 감독 생활만 최소 32년 이상 한 살바도르는 그때의 하신타보다 나이가 더 들었겠지만, 그리고 두 고통의 원인은 다르겠지만, 살바도르의 척추 통증과 하신타의 허리 통증은 연결된다. 현재와 과거를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모습이 왜 그런지, 그 과거를 지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았다.


살바도르는 스페인의 저명한 영화감독이다. 이제는 거장 소리를 듣고, 그의 32년 전의 작품은 ‘고전(classic)’이라고 불린다. 배움도 빨랐고, 노래도 잘했던 아이는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신학교로 보내려던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영화계에 진출한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지리학과 해부학을 영화감독이 되어 몸소 습득하게 된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 전 세계의 영화제를 누비며 지리를 익혔고, 강인한 체력을 요하는 영화 촬영에 오래 몰두하다 보니 병이란 병은 다 앓고 있다. <페인 앤 글로리>는 영화를 찍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느끼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는 살바도르가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아픔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영자원으로부터 특별 상영과 GV를 요청받아 자신의 영화를 32년 만에 본 그는 전과는 다른 감명을 받는다. 당시엔 평가절하했던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의 연기가 좋아 보이는 것. 자신의 의도한 대로 연기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알베르토의 선택이 좋았던 것. 그렇게 살바도르는 알베르토를 32년 만에 찾아가게 된다. 아이고, 32년 만에 염치도 없으셔라. 알베르토는 헤로인을 하고 있었는데, 32년 전엔 그렇게 경멸하던 그것을 같이 해보기로 한다. 상대방에 대한 가장 쉬운 이해는 똑같이 행해보는 것에서 비롯하지 않겠는가. 알베르토는 살바도르가 쓴 자전적인 단편으로 공연을 하게 되고, 그 공연의 실제 단편의 주인공인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가 나타나 역시 과거엔 알지 못했던 속마음을 확인하거나, 못다 한 대화를 한다. 현재를 있게 한 과거와의 만남, 그리고 다시 현재. 인간의 기억력엔 한계가 있고, 개인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영화라서 가능할 수 있는 일들. “사랑이 산을 옮길 수 있을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선 사랑만으론 부족”하지만, 영화라서 채워질 수 있는 상황들.


알베르토와 페데리코를 거쳐 살바도르는 다시 하산타에게로, 종국에 베나치오에게로 이어진다. 살바도르의 어린 시절, 그는 구멍 난 줄도 모르고 신고 다녔던 양말을 보고 기워주던 하산타처럼,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리고 아픈 몸이 되어 자신의 홈이 파인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살바도르가 만나는 네 명의 인물과의 이야기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알베르토와의 사연처럼, 당시엔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고, 그러기도 어려웠던 상황이었을 뿐이다. ‘뿐’이라고 하기엔 크나큰 요인이지만 말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얼핏 다 다른 것들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옷이 될 몸통이고 소매고, 바이어스고 시접이었다. 극 중 노년의 하산타가 말했듯, 누군가는 알모도바르가 영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쾌해할 수도 있지만, 알모도바르 자신이 과거와 화해하고, 꼬인 실타래를 잘 매듭지어놓은 모양새가 아주 예쁘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그럴 수 있어도, 이것이 감독의 고해와 같은 영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알모도바르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아픔을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켰음을 관객에게 선보인 순간,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 무게감에 짓눌린다. 영화를 못 찍으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말 그대로 거장이고 고전이며, 제목 그대로 암모니아 냄새와 자스민 향기, 산들바람이 섞인 <페인 앤 글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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