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olors: Red, 1994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학생이며, 패션모델로 활동 중인 발렌틴(이렌느 야곱)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빨간색이 가득하다. 박애. 박애라는 단어를 얼마나 사용할까? 짧게나마 머릿속을 뒤져봐도 이번 시리즈가 말하는 이념 자유, 평등, 박애를 말할 때뿐인 것 같다. 내가 쓰는 건 물론이고, 박애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어떤 글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발렌틴의 이웃에는 오귀스트라는 법대생이 살고 있다. 발렌틴과 오귀스트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발렌틴은 여행 간 남자 친구로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으며, 반대로 오귀스트는 여자 친구가 무얼 하고 있는지 가볍게 궁금해하는 정도다. 인간은 다 다르기 마련인데, 영화라는 세계에 등장한 사람들이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 감독이 보는 인간의 어떤 면모를 말하는 것일 테다.
발렌틴 커플과, 오귀스트 커플, 노인과 그가 전에 사랑했던 여자. 우리가 전에 봤던 줄리, 카롤과 도미니크. 그리고 발렌틴과 오귀스트. 그들의 스토리를 주욱 나열하면 이 영화를 읽는 데에 큰 무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처한 어떠한 상황들과 나의 지나간 삶이 만든 어떤 조건들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와 나의 관계가 연인인지, 친구인지, 가족인지, 다른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 홍상수가 그렇게 부르짖던 “진짜 사랑”과는 다른 얘기일 것이다.
<세 가지 색> 트릴로지엔 빈 병을 줍는 할머니가 나온다. <블루>에서 줄리는 그저 보기만 했다면, <레드>에 이르러서 발렌틴은 그녀를 돕는다.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지나갈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 가득한 빨간색은 정열적이거나, 뜨거운 무엇이 아닌,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화로 같은 것이었다. 그 따뜻함은 서슬 퍼런 <블루>에서부터 지나온 것이었기에 더 극명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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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들은 곡, 백예린의 <지켜줄게>.
가끔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