きみの鳥はうたえる, And Your Bird Can Sing, 2018
사토 야스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오버 더 펜스>(2016)를 워낙 좋게 봤기에,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역시 기대가 가득했다. 사토 야스시는 비틀즈의 노래 <And Your Bird Can Sing>를 차용했을까. 동명의 노래를, 가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다.
You tell me that you`ve got everything you want. And your bird can sing. But, you don`t get me. You don`t get me.
영화의 세 주인공 사치코(이시바시 시즈카)와 시즈오(소메타니 쇼타) 그리고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나’(에모토 타스쿠)는 나란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와 트뤼포의 <쥴 앤 짐>(1961)에서 시작해 <글루미 선데이>(1999)와 <몽상가들>(2003)을 거쳐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 이르렀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은 또 어떤 이들에게로 나아갈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두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전형적인 삼각관계는 그래서 질척거리고 불꽃이 튀는 대신, 셋이기에 함께 존재할 수 있고, 셋이기에 오히려 더 밝은 빛을 발할 수 있는 이들이다. 셋은 주로 밤에 활동한다. 당구를 치고 다트를 하며, 클럽에 가서 밤새 춤을 춘다. 셋은 당구를 친다. 각각이 다른 세 명이 손을 붙잡고 내달리는 장면은 아슬아슬하게 보일 수 있다. 전력으로 달리다 보면 누군가는 손을 놓쳐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혼자 앞으로 튀어나갈 수도 있다. “질척거리는 관계는 싫다”며 시작한 ‘나’와 사치코의 관계는 ‘나’라는 공이 사치코에게 나아가며 깨진다. 그러나 사치코는 어떤 이유에서든 시즈오를 택했고, 셋이서 이루었던 삼각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가족에게서 결핍됐으나, ‘나’와 사치코에게서 충족하던 관계가 깨지니 시즈오는 더 이상 셋이 함께 했을 때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 질척거리는 건 싫다던 사치코는 ‘나’의 운동성으로 인해 그 관계가 소멸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
오밤중인지, 새벽녘인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거닐던 ‘나’는 이번 여름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9월이 돼도, 10월이 돼도 말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서로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여름은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온다. 뜨겁게 불타던 젊음은 소멸하는가. 그것의 대답을 말하려는 찰나, 감독은 영화의 소리를 꺼버린다. 사치코는 어떤 답을 할지, 그 답을 들은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시즈오는 잊혀진 냄새를 찾으러 떠날지 알 수 없다.
이창동 감독님의 <버닝>(2018)도 그랬고,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도 그랬다. 뜨거운 젊음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마찬가지로 그 시기에 있는 나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사치코의 우려처럼 젊음은 소멸하고야 마는가? 흔들리는 종수(유아인)의 앞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아사코(카라타 에리카)가 마주한 곧 범람할 것 같은 강물은 정말 그렇게 될까? 비틀즈의 노래에 의지를 해야겠다.
When your prized possessions start to weigh you down, Look in my direction. I`ll be round. I`ll be round.
When Your bird is broken, will it bring you down? You may be awoken. I`ll be round. I`ll be round.
You tell me that you`ve heard every sound there is. And your bird can swing. But, you can`t hear me. You can`t hea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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