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Of Heaven, 2005
십자군 지도자 티베리아스(제레미 아이언스)의 대사 “신은 핑계였고, 우리가 원한 건 영토와 재물이었다.” 예루살렘 성지를 수호한 성주로서 발리안(올랜도 볼룸)의 “신도 이해하시겠지. 못한다면, 신이라고 할 수 없으니 걱정할 거 없고.”라는 대사에서 영화의 성격을 볼 수 있었다. 리들리 스콧이 <킹덤 오브 헤븐> 보다 먼저 만들었던 <블랙 호크 다운>(2001)에서 동아프리카 소말리아로 파견된 미군 정예부대를 다루며 분석적이지도 감성적이지도 않은, 철저하게 시각적인 이미지의 나열로만 역사를 말했던 연출이 있었기에 십자군을 필두로 서방의 종교가 중동의 동방 종교를 침략하고 정벌했던 역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했지만, 189분의 러닝타임은 너무나 평면적이었고 단조로웠다.
서사극은 철저하게 미국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세계 각지에서 제작이 가능하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캐스팅이 필요하고, 그 막대한 비용의 소모를 이끌어갈 스타도 필요하다. 초기 영화사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할리우드 뿐이었고,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시각으로, 철저하게 미국적인 장르로서 형성됐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TV의 발달로 줄어든 관객을 다시 불러 모아야 했기에 방송국에서는 따라 할 수 없는 스펙타클한 것이어야 했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아마 100년 전에 만들어진 <벤허>(1925>까지는 거뜬히 가능할 것이다. <벤허>로부터 100년이 지난 서사극의 흐름에 <킹덤 오브 헤븐>이 굉장히 유의미한 획을 그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적인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서방의 지도자들과 동등하게 동방의 지도자들 역시 존중했으며, 11세기의 역사를 다루며 21세기의 현재를 비판하니 훌륭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고대 전쟁사에서는 평시에 하던 일도 포기하고,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여성이라는 캐릭터마저 에바 그린이라는 강렬한 이미지의 배우를 선택함으로써, 그 비중을 결코 경시하지 않음으로써 전장에서 남성 캐릭터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티베리아스나 발리안의 대사처럼,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종교적인 신념을 후순위에 두는 것은 너무 뻔했고 단순했다. 거의 판타지에 다름 아니었던 <글래디에이터>(2000) 보다는 깊이가 생겼지만, <블랙 호크 다운> 보다는 평이했다.
나는 분명 리들리 스콧의 영화를 좋아한다. <에이리언>(1979)이 있고, <블레이드 러너>(1982)도 있으며, <델마와 루이스>(1991)도 있다. <매치스틱 맨>(2003)과 <마션>(2015)은 어떠랴.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이 2001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1982년에 2019년을 상상하며 만든 <블레이드 러너>의 예술적 경지. 리들리 스콧이 다룬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지만, 과거의 서사는 좀처럼 만족스럽질 못하다.
물론, 세계영화사를 비디오방의 모습에 비유해,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영화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중국과 일본, 아랍권과 인도의 영화는 있더라도 한국의 것은 없음에서 나오는 질투 인지도, 그 나라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 탓에 흥미를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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