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Silence, 2020
100분 정도의 영화를 뚝 반으로 나눠 앞의 50분은 너무 흥미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언급해야만 하겠지만, 그렇다고 뒤의 50분이 별로라는 건 아니다.
영화에 대한, 연출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서, 이건 활자로 쓰인 원작이 있는가? 혹은 감독은 글을 쓰는 인물이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건 영화를 본다기보다,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컸다. 태인을 연기하는 유아인은 영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지문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각이 다 전달됐다. 유아인의 연기를 칭찬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연출의 몫도 분명히 크다.
<소리도 없이>는 계속해서 줄타기를 한다. 보기 좋게 나의 예상이 계속해서 틀렸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트럭 장수로 창복(이재명)과 태인은 여기저기 다니며 달걀을 판다. 8천 원을 8천만 원이라 농담하는 창복은 내심 그것이 마냥 농담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검은돈을 계속해서 받아왔을 창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인에게 “남의 것을 탐하면 불구덩이에 떨어져.”,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해야지. 허튼 일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한 번의 거래에 8천 원을 받는 달걀 장사와, 8천만 원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검은 일 모두 창복에겐 같은 노동이다. 후자에 무게를 더 두고, 그저 신분세탁 차원에서 달걀을 팔고 있었더라면, 태인이 라면을 끓이며 챙겨둔 달걀 두 개 중 하나를 아끼지 않았을 테다.
유아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에겐 온전한 가족이 한 번을 없었다. <완득이>(2011)에서 풍물 장수를 하던 아버지(박수영) 대신 그 역할을 해주었던 선생님 동주(김윤석) 같은 존재 창복과 <버닝>(2018)에서 종수가 지내던 집 같은 곳으로 의도치 않게 초희(문승아)를 데려오며 유사가족이 구성된다. 진짜 가족이 아니기에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쓰이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들을 맞게 된다. 의도적으로 선택했든, 언젠가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하게 됐든 그렇게 가족이 된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의 이야기가 됐겠지만, 이미 범상치 않은 전반부를 지나온 후였다.
초희의 등장이 이 드라마에 찾아올 위기를 암시했다면, 그것이 극에 달하는 것은 창복이 부재하게 되고부터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전부 정해주고 안내해주던 이가 사라지니 태인은 어떻게, 왜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렇게 방황하다 내린 첫 번째 선택은 초희를 다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온전한 태인의 선택은 아니었다. 초희가 태인의 집에 온 첫날밤에 이미 시작된 것은 <아무도 모른다>(2004) 속 아이들 같이 지내고 있는 태인과 그의 동생 문주(이가은)를 길들이는 것이었다. 초희는 태인이 보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모습이 다름을 보여주었다. 어린 문주는 그것을 계산할 처지가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태인은 초희를 닭집에 데려다주고 왔다가 초희가 반듯하게 걸어놓은 정장을 보고 반사적으로 되돌아간다. 초희의 행동이 재밌는 게, 처음 태인이 자신을 닭집에 데려다주고 갈 때는 어떤 상황인지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친부가 삼대독자인 아들을 구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위해 지불될 돈을 깎고 있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러나 태인이 자신을 다시 데리러 왔을 때,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불같이 화낸다. 밀어낸다. 초희의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훈육받은 태인은 그날 밤에도 초희를 찾아 나선다.
그 험난한 길을 왔음에도 초희는 태인을 마주하자 도망치는 것보단 다시 태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태인은 평생을 창복을 따르며 살아왔고, 이제는 초희를 따르게 된다. 그렇담 이제 주도권과 선택권은 초희에게 있다. 초희는 짐승 같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주는 유사 아버지와 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저울질을 하고 있는 진짜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태인은 종수가 그랬듯 입고 왔던 옷을 벗는다. 다시 그런 옷을 입을 날이 올까?
#소리도없이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 #이가은 #홍의정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