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처럼>

Black Republic, 1990

by 박종승


운동권 대학생 김기영(문성근)은 시위 주도 혐의를 피하기 위해, 수배 투쟁을 위해 강원도 탄광촌에 숨어 들어온다. 탄광촌에 왔으나, 탄광들은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대부분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한 연탄 공장에 들어간 기영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삶을 직접 보고 겪게 된다.


전반적으로 캐릭터 설정이나, 그들 간 관계가 빈약하지만 영화는 그 배경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첫 장면을 볼 때엔 몰랐으나 그가 서울 대학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사상을 위해 운동하는 지식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흙먼지 날리는 광산 길을 멀리서부터 홀로 걸어오는 모습은 방황과 혼란의 시대를 힘들게 걷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영은 다방 레지 영숙(심혜진)과 마음도 주고받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기영을 보러 온 대학 후배를 만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말을 들은 영숙은 상심해 홀로 술을 마신다.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다방 레지의 삶에서 벗어나 기영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불 꺼진 다방 안에 홀로 있는 영숙과 어항 속 물고기를 같이 한 화면에 담아 어항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이 그녀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후에 둘은 함께 냇가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는데 자유로이 흘러가는 그 냇물은 둘의 처지와는 상반된 것이었다.


온통 잿더미인 탄광촌의 삶에서 기영과 영숙의 빈약한 멜로라인은 그럼에도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주말을 맞아 항구에 간 날 밤 어둑한 그림자 저편에서 영숙은 “전 송영숙이 아니에요. 이금란, 그게 제 진짜 이름이에요. 그 여자가 누굴 좋아하게요?”라 고백하는데, 그러나 영숙은 기영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다시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폐광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기영은 수배 중이었기에 가담할 수 없었다. 기영은 한 폐광에 들러 길게 늘어선 탄차를 보고는, 맨 뒤의 탄차 한 대를 있는 힘껏 밀어 보지만 너덧 개만이 미동을 보일 뿐이었는데, 그 무력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기영은 말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희망에 비해 현실은 항상 초라했다. 그 초라한 현실이 우리의 출발점이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고 초라한 어떤 출발점에서 또다시 있는 힘껏 도약할 것임을.


#그들도우리처럼 #문성근 #심혜진 #박중훈 #박광수 #영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퀸스 갬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