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SWEEPERS, 2020
첫 단추를 잘 꿰다. <승리호>를 시작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우주영화로는 괜찮은 것 같다. 영화를 세세히 뜯어보면 우주를 다룬 것에선 최초이나, 다른 것은 최초인 게 하나가 없다. 2092년을 배경으로 2020년에 만든 영화이나 대사도, 캐릭터도, 구성도 기시감이 잔뜩 묻어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점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간 많이 봐왔던 것들을 수준급으로 잘 소화했다는 것이다. 단지 그 장르의 특성에 한국적 상황을 넣은 ‘K-좀비’와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할리우드의 제작비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말이다. 내가 이 <승리호>를 보면서 계속 떠오른 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와 <설국열차>(2013)였다. 그루트나 로켓쯤 역할의 업동이(유해진)의 발견은 <승리호>의 큰 쾌거다. <스타워즈>의 K-2SO와 흡사한 비주얼의 업동이는 대사 한 마디만 들어도 단번에 그임을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이 한몫했겠지만, 나는 업동이에게서 유해진의 얼굴을 보았다. 화투패를 들고 있는 장면에선 고광렬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좀 허술하고, 더 치밀하지 못했음은 나도 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설국열차>와 비등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더없이 <승리호>적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이들이지만 매번 뒤통수를 맞고야 마는 이들. “가난이 죈 지, 죄를 지어 가난한 건지” 모르겠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은 늘어나는 이들. 돈 모아보겠다며 십시일반 했으나 곗돈 들고 튄 놈들. 화투 패만 손에 잡으면 서로 멱살 잡고 상 엎는 이들. 사람도 아닌데 성형수술하겠다고 돈 모은 이(결과는 반전), 22세기를 앞두고 있으나 아직도 땀 뻘뻘 흘리며 힘으로 엔진 가동하고 고장이라도 나면 한 대 쥐어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 그렇게 큰일을 겪고도 된장찌개 냄비에 숟가락 푹푹 찍어 김치와 밥상에 머리를 모으는 이들이 있었다. 승리를 이름에 걸었으나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 지는 게 이기는 것임을 배운 이들이 <승리호>에 있었다. ‘한국식 OOO'가 아니라, 그냥 한국의 것이었다.
스크린도 사운드도 빵빵한 극장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났음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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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 꽃님/도로시 역의 박예린 배우는 노출이 안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