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ight, 2020
어두컴컴한 밤, 누가 모는지 알 수 없는 자동차에 카메라가 타서 사고 현장을 지나간다. 한 대는 거꾸로 전복돼있고, 한 대는 가드레일에 닿아있다. 두 차 안의 피해에 대해선 잘 묘사하지 않는다. <빛과 철>은 한 사고로 남편을 잃은 영남(염혜란)과 희주(김시은) 두 인물의 이야기다. 사고가 났고, 조사가 이뤄지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게 됐지만 영화는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영남의 남편은 의식을 잃었고, 희주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아는 둘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줄 수 없는 상태에서 의도치 않게 엮인, 그러면서도 강하게 충돌해 저 멀리 떨어져 나간 두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그런 <빛과 철>은 실뜨기 같다. 두 면이 맞닿아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을 풀어 보면 또 다른 국면이 눈앞에 놓인다. 우리의 삶에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엮이는 관계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교통사고라는 건, 영남과 희주가 엮이게 되는 우연한 사건인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문을 열었으나, 교통사고는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진행되는 미스터리는 다소 피곤함을 선사한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화가 조명하는 그 이면이란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개선은 되지 않고 있는 산업 현장이다. 하청노동자와 산재 같은 것들, 영화가 처음부터 조성하는 분위기와 말하는 소재들로 인한 피곤함이 있다.
영화를 보다, <쓰리 빌보드>(2017)를 봤을 때의 감상이 떠올라 그때의 기록을 가져왔다.
탐욕, 분노, 무지를 다루는 불교의 실용주의적 철학에서, 앞선 것들로 구성된 삶의 실존 상황에 적응하여 문제를 경험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진리라 보았다. ... 그중 압권은 밀드레드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슴을 보는 장면인데, 붓다의 어느 전생에서 사슴으로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가 연상됐다.
당시의 왕은 사냥을 무척 좋아했고, 공포에 떨던 사슴들은 순번을 정해 해당된 사슴이 죽기로 했었다. 어느 날 임신한 암사슴의 차례가 됐고 무리의 우두머리와 모두에게 순서를 바꾸어줄 것을 호소했으나 그것을 거절하기에 이른다. 이에 암사슴은 붓다의 전신을 찾아가 호소했고, 그는 왕에게 자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한다. 그의 행동은 왕의 자비심을 불러일으켜 사슴들은 물론 그 지역의 모든 동물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한다.
세상살이에서 손해, 악평, 비난, 괴로움을 겪으면 슬퍼하고 낙담하며 분노에 빠지게 된다. 전적으로 해로운 분노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내와 증오의 버림,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애를 길러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내를 하고 증오심을 내려놓고, 자신과 모든 생명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인 자애심을 기르는 것이 분노를 치유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분노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분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 보고, 다른 시각에서 구원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닌, 나의 의지에 달린 일일 것이다.
#빛과철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배종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