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ari, 2020
레이건 시대를, 8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내게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부부의 삶을 깊이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다. 미나리. 냇가처럼 물기가 많은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잘 자라고, 수질을 정화해주기도 하며, 향이 좋아 식용으로도 쓰이는 여러해살이풀. 미국에서도 아칸소라는 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게 순자(윤여정)가 미나리를 심는 장면은 이삿짐을 싣고 새로운 집에 도착한 제이콥네 가족의 모습과는 또 다른 오프닝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한 것 같았다.
고춧가루, 멸치, 미나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한국을 떠나온 제이콥과 모니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며 서로를 구해주길 바랐다. 한국의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아예 먼 타국으로 가려했음은 지난 삶의 기억을 뒤로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 기억은 단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것의 냄새도, 감촉에 의한 것도 있다.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하던 그 기억은 모니카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볼 수 있었다. 80년대를 겪어보지 못했으나, <미나리>는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삶을 마치 겪어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한다.
각자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살 것 같은 미국에서의 시작이지만, 그래서 딸 앤(노엘 조)과 데이빗(앨런 김)을 포함해 가족 구성원 내 다양한 관계들을 차례로 다루며 이민자 가족은 물론 한국의 가정에서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부터 들떠있는 제이콥과는 다르게 “우리가 약속했던 건 이런 게 아니잖아. 라며 불평하는 모니카의 이야기에서,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 그리곤 할머니 순자의 등장으로 아이들과 순자의 관계 다시 장모님과 부부의 관계 등으로 말이다.
미국 이민자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함은 어디에서 사는 가족이 아닌, 그게 어디든 서로가 함께하는 가족 그 자체다. 한국에서 건너온 순자가 모니카를 다독일 때, 할머니 냄새가 싫다며 밀어내는 데이빗을 안아줄 때, 큰 사고를 당한 밤 모두가 나란히 누워 자는 장면들에서 언젠가 고춧가루와 멸치를 보고 눈물을 터뜨렸을 모니카처럼, 데이빗도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무엇을 보고 울컥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순자가 가져간 미나리는 미국의 것인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은 미국인인가. 영화는 그것을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고, 감독 개인의 기억을 미화하려 하지도 않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할머니의 냄새, 쓸모 있는 존재이고픈 가장의 무게, 자신도 모르게 등이 굽은 엄마의 고단함, ‘스트롱 보이’이고 싶은 아이들 모두 공감되는 것들이었다.
#미나리 #스티븐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김 #노엘조 #정이삭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