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a and the Last Dragon, 2020
눈과 귀는 즐겁지만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부분이 많았다. 켈리 마리 트랜의 라야, 아콰피나의 시수, 젬마 찬의 나마리가 메인이 되는 구도에 단지 용서와 믿음만 말하기엔 배경에 깔린 서사가 아쉽다. 수백이 넘는 강줄기를 모두 뒤지는 데에 6년이 넘게 걸렸다는데, 사실 6개월도 많을 것 같다. 세계는 넓게 잡았는데, 세계관은 작다. 서사가 빈약해 인물들이 거치는 일련의 과정이 정해져 있는 수순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통과할 것이 아주 자명해 보이는 쉬운 난도로. 그래서 캐릭터를 보자니 캐릭터의 매력도 훌륭하진 않다. <겨울왕국> 시리즈의 올라프나 크리스토프 같은 조연의 굵직한 활약을 생각하면 한참 못 미치고, 그렇다 보니 이들이 모여 선보이는 협업 역시 그저 그렇다. 그래도 디즈니가 세상에 선보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지루하진 않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매점에서 음식물을 구매할 때면, 직원이 상영관 내에선 취식이 불가하다고 안내를 하며, 팝콘은 가지고 나가라고 친히 뚜껑까지 덮어준다. 그런데 내가 앉은 뒷줄에 마스크를 벗고 팝콘을 먹는 이가 있더라.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주 단순하다. 서로 간의 신뢰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라야에게 시수는 실상 그렇지 않음을 말한다. 상대를 믿는 데에 그렇게 많은 요소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이 부러웠다. 나의 오늘은 그렇지 못했으니 누군가에 의한 불안함과 불쾌함 없이 집을 나서는 날이 어서 오길. <마녀배달부 키키>(2007)의 마지막 장면처럼 많은 이들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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