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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07. 2021

<여름 이야기>

Conte d'Ete, A Summer's Tale, 1996

 에릭 로메르의 사계절 이야기는 그 계절의 이름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이 떠오르게 한다. <이른 봄>(1956), <초여름>(1951), <가을 햇살>(1960)처럼 그 계절이 주는 감각을 떠올리게 된다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여름은 아직은 땀을 흘릴 젊은 나날이 아닐까로메르의 영화에서 여름이 많이 그랬듯, <여름 이야기역시 휴가지에서의 우연한 만남들과 그것 사이에서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선택의 순간들을 다룬다.


수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가스파르(멜빌 푸포)는 홀로 여행을 왔다여자 친구 레나(오렐리아 놀린)와 후에 만날 것을 기다리고 있지만식당에서 만난 마고(아만다 랑글렛)와 만남을 갖는다마고는 가스파르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끔 편한 대상이다가스파르는 마고에게 속에 담고 있던 얘기들도 서슴없이 꺼낼 수 있지만마고 역시 연인이 있는 상태였다마고는 자신의 친구 솔렌(그웨낼 시몬)을 소개시켜 준다뜨거운 햇빛에 절로 옷을 벗게 되는 해변에서 적극적인 솔렌은 가스파르가 금방 빠져들게끔 한다가스파르는 아직 자신이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다아직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는 시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돈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긴 싫다고 하며그러면서도 자신이 선택하는 대신 대상이 자신에게 찾아와 주길 바라는 인물이다어떤 가을이 올지 모르는 상태에 놓인 인물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레나가 나타난다기다리던 여자 친구의 등장이지만 가스파르는 편치 않다얼핏 세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거나사랑싸움이라도 할 것 같지만에릭 로메르는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끝낸다가스파르는 셋 중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다속으론 마음을 더 주고 있는 대상이 분명 있겠지만 다른 두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에릭 로메르가 사계절 중 여름에서 차용한 인물 설정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으며그가 세 명과 함께 가고자 했던 섬 웨상(Ouessant)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폭풍우 탓에 난파선과 비극의 섬으로 각인된 곳이라고도 한다웨상 섬은 영화에서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지만 역시 선택의 이유가 보인다.


가스파르는 우유부단하다기 보단매번 자신의 생각을 수정한다아직 자신의 것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가스파르는 세 여인 중 한 명을 택하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녹음 장비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하지만 그 장소에 마고가 있었다마고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진 못했지만마고에게서 가스파르가 탄 배가 서서히 멀어지자 마고를 남겨두고 난 여러 달을 떠나네라는 구절의 노래가 들린다가스파르의 이번 여름에선 무엇도 선택하지 못했고무엇도 얻지 못했지만누구에게나 그런 시기는 있기 마련이다가스파르는 바캉스를 온 것이 아니었던가훗날 그가 맞이할 가을에 더 풍족하길겨울에 더 성숙하길.


#여름이야기 #멜빌푸포 #아만다랑글렛 #그웨넬시몬 #오렐리아놀린 #에릭로메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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