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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Jan 01. 2021

메종일각 - 시대의 공기

다카하시 루미코

다카하시 루미코 작가님의 팬이다.


 <메종 일각>, <란마1/2>, <1파운드의 복음>이 새 판본으로 재 출판되고 있어서 팬심에 일상적 수집욕을 더하여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메종 일각>(도레미 하우스로 알려진)은 가슴 찡한 로맨스이자 시츄에이션 코미디였고, <란마1/2>은 포복절도의 무협 코미디였다. 과연 30년 가까이 지나 다시 읽는 이 만화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결론은 두 가지다. 당시에 이 정도의 뛰어난 감각으로 엄청난 양의 만화를 양질로 쏟아내셨다는 점에 대한 존경심은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이 만화를 같이 즐기자고 권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메종일각>(80-87년 연재)과 <란마1/2>(87-96년 연재)의 제작 연도를 봤을 때, 젠더 코미디 부분은 불편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 만화 특유의 ‘남자의 응큼함’을 유머의 소재로 쓰면서 여자 캐릭터의 노출을 적절히 끼워넣는 방식은 오래된 관습이고 이 만화들에서도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다카하시 루미코 작가의 만화에선 그 지점들이 다른 당시의 만화들보다는 덜 불편하고 지금 봐도 어느 정도는 넘어가진다. 코미디들이 여성적 관점에서 보여지고 남자 캐릭터들이 위험하거나 해롭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같이 읽고 즐기자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 만화에 너무 몰입했다가, 남녀 관계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적 시차가 적지 않다.


 그런데 그 시차는 그대로 당대의 공기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시대에 좀 뒤떨어진 채로, 그들은 열심히 사랑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허락되는 방식으로 좋은 사람이고자 노력하니까. 특히 개인은 소박하지만 사회는 크게 발전하고 있던 희망의 공기가 그 안에 있다. 일종의 다큐적 기능이다.


 <메종일각>이나 <1파운드의 복음>은 드라마성이 강한 이야기들이라, 시대극이라 생각하며 성인의 입장에서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란마1/2>은 엄청나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데, 지금 보니 그 상황들을 죄다 웃으며 따라가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극적인 만화적 연출들은 지금봐도 시원시원하다. 당대에선 최고의 속도감과 개그였다. 그리고 소년만화 중에선, 폭력이나 선정적 장면들에 대해 거부감이 비교적 적게 들도록 연출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적 한계는 명백하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용한 마틴 스코세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다르게 변주해본다. 가장 그 시대에 충실한 것이 가장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기록의 가치를 가지고. 또 가장 지역성에 충실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다카하시 루미코 작가의 만화들은 그 지점들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10대 자녀에게 부모로서 추천할만한지는 고민되지만.


ps.  TV드라마에 대해서도, ‘시간을 뛰어넘는 명작’이란 헛된 기대다. 다만 그 시대의 충실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있을 뿐이다. 그 제작년도에, 가장 진취적이면서 대중의 기호에 따르고자 노력한 서사와 영상, 음악의 기록. 기대를 버림으로서 오히려 기대가 충족되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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