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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제작기 10 - 첫 촬영

액자가 된 소녀

by 행복한 이민자

2. 당일 오전

결과적으로 완성된 <액자가 된 소녀>의 주인공, 성택은 최종원 선생님이다. 오순택 선생님은 같이 하지 못하셨다. 아니, 내가 포기했다. 모든 건 첫 날 일어났다.

시작은 스태프들의 간단한 축하 인사말이었다. 그간의 촬영과 메인 연출로서의 첫 촬영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 의미를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주요 스태프 분들을 선생님께 인사시켰다. 그런데.......

오순택 선생님은 내가 본 중 가장 쇠한 모습을 이 날 보이셨다. 대사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영어가 튀어나왔다. 액션 지시를 매번 잊어버리셨다. 모든 스태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데뷔작 첫 씬에 대한 축하와 웃음은 쑥 들어갔다. 곧 그 수군거림은 천근같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오 선생님은 낯선 환경에 처한 어린 아이 같아 보였다. 그 현장에서 오로지 나만이 선생님을 보호할 수 있었다. 선생님, 여기는 이 대사가... 선생님, 여기는 이 액션이... 선생님은 아이처럼 집중하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그리고 현장의 모든 스태프 앞에는 건강과 기억력이 온전치 않은 백발의 당황한 노인이 서 있었다. 신체도 정신도 험난한 야외촬영을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실존을 이야기하던 깊은 눈, 연기 이론을 강의하시며 각각의 차이를 구분하고 통합하시던 빛나던 지성, 연기 실습 때 시연을 보이시던 아름다운 태와 우렁찬 목소리에서 나오던 기개, 미국의 적대적 현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커리어를 이어온 수십 년의 시간을 몸에 새기신 그 분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감동시키고 울리고 따르게 했던 그 분은,

이제 80대 치매 노인이었다.

세월의 야속함이여.

그러나 내게는 애도의 틈이 없었다.

단막 촬영이 어려운 것은 촬영 일정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어 다음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줄 엄수가 연속물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고정 장소가 있어 촬영의 일부를 넘기고 다음에 찍거나, 한 번 찍어본 노하우를 발휘해서 다음 촬영 때 속도를 올리거나 할 기회가 없다. 예산의 한계가 다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장소가 첫 촬영이자 마지막 촬영이다.

시간이 한정 없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몰락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이렇게는 갈 수 없다는 걸. 뱃 속으로 무언가가 위벽을 깎아 내리면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위장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배를 움켜쥐었다.

한 씬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었다. 아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까지의 구상이 너무 길었다. 간단한 실외 씬을 악전 고투 속에 대충 마치고 실내로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가고 낮이 되니 선생님의 신체적 상태는 많이 올라왔다. 실내 씬은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촬영 세팅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나를 찾으셨다. 아까 실외 씬에서의 불안함을 토로하시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선생님은 맑은 눈빛으로 내게 물어보셨다.

"종선아. 왜 여긴 Catering truck(식당 차)이 없니? 이 많은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일하고 있는데, 커피 한 잔 샌드위치 하나 나눠주지 않는 게 말이 되니?"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선생님, 여기는 밥차 같은 건 없습니다. 지금 그걸 걱정하고 계시면 안 됩니다...

실내씬 촬영도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당황한 마음을 미국에서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으로 방어하고 계신 것으로 보였다. 그간 나의 설명은 부질 없었다. 막상 상황이 닥치자 최근의 설명보다는 과거 현장의 기억에 기대시는 것 같았다. 내가 촬영팀과 장비팀에게 콘티를 설명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의상팀 심소연 씨를 옆에 앉히고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케이터링 트럭과 미국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배우 조합이 나서서라도 이런 관행을 바꿔야 되지 않겠냐며... 심소연 씨 역시 많이 놀랐을 것이다. 주연 배우의 컨디션이 이토록 좋지 않은 것은 처음 보았을 테니. 하지만 티내지 않고 손녀 딸처럼 선생님의 말벗을 해드리고 있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정말 그러네요...

촬영 시간이 틀어져 연출부도 온통 공황상태였다. 연출이 하고자 하는 것이 이토록 완벽하게 좌절되었을 때 연출부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촬영을 멈추고 촬영감독, 조명 감독, 조연출과 모여 철수를 결정했다. 점심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오전 열 시까지 끝내야 했던 간단한 씬 두 개를 어거지로 콘티 연결만 시켜놓고 촬영팀은 짐을 꾸렸다.

이제 선생님께 말씀드릴 차례였다. 일단 선생님께 오늘 촬영은 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게 예의 그 사려 깊은 눈매로 물어보셨다.

"Production problem?"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나는 선생님을 안아드렸다. 아니오 선생님...그런 거 아니에요. 괜찮다... 다 방법이 있을거야... 네 선생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제자들과 함께 선생님은 댁으로 떠났고 촬영 버스도 철수했다. 촬영 장에는 나와 연출부가 남았다. 지난 8년간 단 하루 눈물이 허락된다면 그건 그 날이었다. 나는 울었다. 내 영웅의 몰락이 애처로워서, 지키지 못할 약속이 서러워서, 여기에 너무 많은 것을 걸어놓은 내 자신의 어리석음이 기 막혀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8년을 기다려온 날의 맨 얼굴이었다.

세규의 차를 타고 조연출 현석, 수진과 넷이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감정을 수습해야 했다. 이들의 얼굴도 엉망이었다. 모두 최악을 예상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결방. 데뷔 연기. 2차 촬영은 3일 후였다. 2차 촬영부터 엄수하고 오늘 찍은 예산은 최소화해서 협상한 후, 재촬영 스케줄을 새로 집어 넣으면 수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3일 후에 촬영에 나갈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이 작품의 생명은 꺼지지 않을 수 있다. 방송이 펑크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오순택 선생님을 대신할 다른 성택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최종원 선생님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