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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제작기 11 - 첫 촬영, 그리고 다음 날

액자가 된 소녀

by 행복한 이민자


2. 당일 오후

보통 활동 중인 60대 이상 연기자들은 무척 바쁘다. 연극, 영화, 드라마, 가족 여행 등, 사전에 계획된 스케줄들이 다 있기에 급한 섭외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침 최종원 선생님이 큰 스케줄이 없었고, 이 작품에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천운이었다. 당일 오후 대본을 보냈고, 출연 의사를 바로 전해주셨다. 출연 의사가 있다해도 보통 가장 골칫거리가 되는 스케줄도 다행히 우리 촬영 기간에는 문제가 없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 최종원의 '문제적 인간' 같은 이미지가 좋았다고 밝힌 바 있다. 오순택 선생님과는 분명히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 선생님과 비슷한 사람으로 성택을 찾는 것은 오히려 패착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존재감을 갖춘 분이어야 했다. 오 선생님이 경계인의 섬세함이 있다면 최 선생님은 한국적 애환과 에너지가 있는 분이었다. 대중의 기억 속에 한명회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로 숨 쉬고 계신 분이기도 했다. 최종원 선생님만의 결이 성택을 다른 방향으로 살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위기였던 성택의 캐스팅은 빠르게 대처가 되었으나 남은 배우들도 문제였다. 물론 출연하기로 되어 있기는 하나, 오순택 선생님 때문에 모인 배우가 많았다. 이 상황을 바로 알리고 다시 의사를 묻는 것이 예의였다. 선생님은 하차하셔야 하는 상황에 배우들만 남는 것이 제자로써 기분이 개운치 않을 것이었다. 대본 리딩 당시에도 다들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선생님이 예전 같지 않음을 다들 알거나 느꼈던 까닭이다. 나는 직접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제자 분들은 이 소식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SBS <피노키오> 촬영으로 스케줄이 매우 좋지 않았던 진경 선배 또한 그러했다. 그 분들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오 선생님과 같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탓입니다. 선생님이 하차 하셨기에 출연 의사를 거두신다고 해도 절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방송은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간절히 이 작품에 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잔류해 주었다. 진경 선배는 선생님 때문에 힘들텐데 자기까지 더 힘들게 할 수는 없다고 기운찬 격려를 전해주었다. 선생님을 주욱 케어해 왔던 박현정 씨는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제자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같다며 울먹였다. 다른 분들도 담담하게 잔류를 선택해주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무너지려던 집의 들보를 받치고 간신히 다시 세운 형국이었다. 최종원 선생님과도 만나야 하고 이재균 정인선 씨와도 다시 간이 리딩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오 선생님을 뵙고 명확하게 하차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내가 날개를 달아드리고 싶어 했던 분께, 나의 캡틴이었던 그 분께.

3. 다음 날 낮

선생님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시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 부쩍 오래 주무신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나는 연출부와 함께 건강식품을 선물인지 방패인지 모르게 들고 댁 안에 막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선생님 사모님도 거동이 불편하시다. 선생님은 거실로 나오셔서 꼿꼿이 앉으셨고 사모님도 누워 계시다 몸을 일으키셨다. 오늘 따라 선생님은 무척 정신이 맑았다. 촬영 날 아침과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아시는 표정이었다.

하차 결정을 전달할 때, 선생님 위엄 있는 자세로 눈을 가만히 떴다 감으며 내 이야기를 들으셨다. 사모님은 역정을 내셨다. 이럴 거면 준비하는 그 고생을 왜 시켰냐며. 아무리 오랜 약속이라도 선생님의 상태에 대한 판단을 빨리 하든가, 했으면 끝까지 해내든가 이게 뭐냐며. 사모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모님의 역정에 선생님은 오히려 단호하게 화를 내시며 제자인 나를 보호하셨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하차 소식을 받아들였다.

'있어선 안되는 일이지만, 종종 있는 일이야. 나는 괜찮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럴 거 없다. 그런데 종선아, 이제 네가 힘들겠구나.'

나는 또 한 번 선생님께 안겼다. 내 등을 토닥이는 선생님의 손이 느껴졌다. 잘 하는 수밖에 없다. 잘 하는 수밖에 없다.

오 선생님은 아름다운 피사체다. 나는 그걸 소개하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날 오 선생님의 모습은 고고한 왕처럼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같이 본 연출부도 왕이 쇠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오 선생님과 맺었던 인연의 끝이다. 사모님은 내게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고, 나 또한 다시 찾아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간간히 한 사람 건너 안부만 전해 들을 뿐이다. 성택이란 인물은 오 선생님을 기준으로 구축하였으나, 나는 결국 선생님과 같이 할 수 없었다. 예전 선배들처럼 데뷔가 1년이 더 빨랐더라면 이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애초에 일찍 단념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욕심 많은 어린 아이의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 설렘과 기대는 빵 하고 터져버렸다. 하지만 카메라를 대보지 않고는, 결국 알 수 없었으리라. 이 기대가 성취 가능했던 것인지 아닌지를. 오 선생님이 내게 남겨준 가르침을 당신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했던 나의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내겐 아직 그 가르침을 작품을 통해 표현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