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맞이하려면?
사람이 바뀌려면 세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있다.
하나는 사는 곳을 바꾼다.
또 하나는 만나는 사람들을 바꾼다.
그리고 시간 쓰는 법을 바꾼다.
적절하게 들린다. 이 모든 걸 충족하는 방식은 그렇다면 방랑이 아닌가. 유목민적 삶. 멈춰선 곳에 뿌리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삶. 수많은 장소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당연히 시간쓰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구별 여행자. 우린 이 삶에 잠시 여행을 다니러 온 것이니 어떻게 보면 생의 사명에 충실해 보인다.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니 반성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진짜 여행을, 방랑을 한다면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되나. 그날 머물 숙소, 그날 해결할 식사, 그걸 가능케할 돈, 이동할 목표지, 그곳까지의 교통편, 등을 치열하게 생각하는 데에 하루가 다 쓰인다. 낯선 곳에서 안전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소와 사람에 적응하는 일은 사람을 일깨우는 예민한 경험을 주지만 이건 늘 일어나는 변화의 껍질 같은 경험이다. 껍질의 종류를 많이 맞이하게 되지만 껍질 속을 깊게 들여다보긴 어렵다. 다양한 나라의 인삿말을 외울 수는 있어도 어떤 나라의 말로 동화책을 읽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방랑하는 사람에겐 역설적으로 마음과 존재를 기댈 데가 필요하다. 그것이 고향일수도 있고, 직업 정체성일 수도 있다. 방랑자는 마음 속에 완고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뿌리 내려야 그 방랑을 버텨낼 기준점이 생긴다. 방랑자만큼 자신의 기준 정체성을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어찌보면 생존을 위해 가장 깊은 변화를 거부해야 하는 사람이 방랑자다.
그렇다면 정주민은 어떨까. 그 사람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년은 지루해보일 것이다. 변화 없이 늘 해온 일을 반복하는 사람. 그런데 그 반복 속에 축적이 생긴다. 그리고 그 축적은 변화를 끌어온다. 사람은 눌러 앉아 있어도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변화만이 주어진 숙명이다. 어떤 방향이냐의 문제일 뿐. 정주민은 익숙한 시간과 장소와 사람들을 방패삼아 스스로의 내면에서 축적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 주변의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이 그 중심의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신체를 방랑시키기 위해 정신을 정박해야 하는 역설. 혹은 정신을 방랑시키기 위해 신체를 정박해야 하는 역설. 사람은 언제 누구와 어디서든, 일부는 방랑자이고 일부는 정주민일 수밖에 없다.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