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의 역설

생각이 없어야 생각이 생긴다

by 행복한 이민자

위대하다는 것은 하나의 판단이다.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것이 위대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위대하다는 것은 타인이든 자신이든, 누군가의 상태나 존재를 두고 생각하고 판단할 때 생겨나는 의견이다.


그런데 위대함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위대한 연주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의 위대함은 매일의 꾸준하고 오랜 연습의 결과이다.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의 고통을 이겨내는 수련이 그의 위대한 능력과 성취를 가져다준다. 어떤 행위의 반복성과 지속성이 숙련과 고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매일의 반복 훈련을 해나가려면 생각을 많이 해선 안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 없이 일단 해야지만이 이 지겹고 고통스러운 루틴을 이겨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너무 많은 생각은 위대함에게는 독인 셈이다.


아까 위대함은 생각으로부터 비롯하는 하나의 상태나 존재라고 했다. 그런데 위대하다는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그 생각 자체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 위대함이라는 판단의 자의식에서 벗어나 행위와 상태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위대함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위대함의 독이다.


물론 함정이 있다. 반복의 방향 설정. 자기 객관화된 평가와 피드백. 이런 부분들은 생각없는 반복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의미 부여'나 '판단', '생각'이라고 표현하기 이전에, 그저 잠시 '남이 되어보는 것'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스스로 남이라 생각하고 잠시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반복이, 행위가, 존재가 어떤 의미일지가 그려질 수 있다. 생각에 메이지 말기. 어떤 반복의 리듬에 들어가기. 그리고 잠시 남이 되어 보기.


이렇게 생각하면 위대함은 얼마나 생각이 없어도 되는 것이었는가. 물론 모든 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판단이다. 결국은 나만의 삶의 리듬을 구축하는 가운데 가끔 남의 자리에 서보는 것이 삶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물론 이 잡설 또한 과잉된 생각의 산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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