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처럼 고다르 영화 제작기를 찍을 수 있을까.
영화의 탄생을 1895년이라고 치면 영화의 역사는 이제 130년을 갓 넘었다. 현재를 꼭지점으로 130년전과 접으면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제작년도인 1960년은 정확하게 중간에 위치한다. 영화 역사를 뒤집었던 혁명의 시작이었던 괴짜의 데뷔작에 대한 경배를 지금 시점에 만들고자 한 것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야심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다른 제작자의 야심을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실현시켜 준 것일까.
영화는 일반적인 '실화 기반'영화의 문법을 살짝 벗어난다. 시대극을 성실하게 재현하는 풍모 대신, 당시 미디어의 느낌 자체를 재현한다. 80년대와 70년대를 떠올리면 총천연색으로 아련하게 재현한 현대의 영상보다 색바랜 필름 카메라의 스틸이나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눅눅한 색감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듯, 이 영화는 당시에 찍은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이 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수행적 재현이라고나 할까. 흑백의 4:3 화면.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해석이라기보다 당대의 감성과 생각을 최대한 재현해보고자 하는 야심, 혹은 경애가 느껴진다. 관점 자체를 그 시절로 끌고 내려가는 재현의 시도랄까. 재해석이 아니라 가능한 재현의 수행.
난 고다르 영화의 튼을 좀 불편해하는 반면 링클레이터 영화의 톤은 좋아한다. 이 영화는 누구의 톤이 더 우세했을까. 아무래도 고다르가 이긴 것 같다. 고다르처럼 즉흥으로 일관하며 영화 촬영을 진행할 수는 없었겠지만, 최소한 당대의 제작기를 찍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져가고자 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이상의 중층성이 있다. 2025년에 내놓을 영화로서의 고민, 당대를 미술적 뿐만 아니라 연기적, 연출적으로도 재현하고자 하는 관점, 그리고 주인공인 고다르의 관점이 다층적으로 느껴진다.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트뤼포나 샤브롤 등의 감독들도 반갑지만, 스쳐지나간 알랭 레네, 자끄 드미, 그리고 아녜스 바르다의 재현이 반가웠다. 어떤 매체가 역동하는 젊음들과 만나 혁명적 도약을 하는 시기란 얼마나 두근두근한가. 앞으로 영화 전공 학생들은 박제처럼 느껴지는 당대의 정보를 생생하게 이해하기 위해 무조건 이 영화를 한 번은 보게되지 않을까 싶다. 링클레이터의 야심은 그곳에 있었던 게 아닐까. 이후의 시네필들이 자신의 렌즈를 통해 누벨바그를 알게끔, 느끼게끔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