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잠정)최종화 단상

완결된 체계 안에서의 의미

by 행복한 이민자

<배가본드>는 슬램덩크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품으로 에도 시대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인데 연재 중단으로 악명이 높다. 천하무적을 원하는 미야모토 무사시는 70 대 1의 대전까지 벌인 이후, 다친 몸을 추스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농부 이야기가 이어지다 이제 다시 검의 세계로 돌아가나 싶은 순간 이야기가 끊기고 벌써 10년이 넘었다. 팬들은 이제 연재 재개를 포기했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타이밍을 놓쳐도 너무 놓친 감이 있을 것이다. 성에 차지 않는 스토리 라인을 그리느니 안 그리는 게 나은, 아쉬울 것 없는 입장이라 그럴까.


오늘 <배가본드>의 최종화가 2008년 작가의 개인전 형태로 공개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행 중인 마지막 권이 2014년에 나왔으니, 최종화를 그리고도 6년이나 추가로 몇 권 분량을 더 연재한 것이다. 되짚어보니 70대 1의 사투를 그리고 나서 바로 최종회를 그리고 개인전을 연 것으로 시기상 추정해본다. 최종회의 내용은 무사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최종화를 그린 이후 <배가본드>의 연재 내용에 검투 분량은 크게 줄어든다. 무사시도 작가도 이 사투에 지쳐버렸다는 듯이.


<배가본드>에 따르면 무사시는 천하무적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의미를 생각하고 구하는 철학자다. 그의 아집은 천하무적이라는 명예를 좇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진검승부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가운데 그는 검이란 무엇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한다. 자신이 강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목숨을 거두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구도자적 성장을 하는 서사다.


그리고 최종화에서 그는 검에 살았던 인생의 의미를 환영같은 기억과 함께 되새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인생에서 큰 의미였던 사람들과 선문답을 나눈다. 그는 말한다. 글은 바다와 같아서 깊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바라만 봐서는 아름다움과 지루함이 있을 뿐이라고. 만년의 저술활동을 통해 역사에 남은 무사시의 철학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의 공적은 대부분 역사적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병법서를 쓴 것은 맞으나 그의 공적에는 교차 검증되는 사료가 없이, 주로 양아들을 비롯하여 후대가 남긴 것 뿐이다. 실제 역사에서 검성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보다 훨씬 영웅이 되어버린 무사시의 이야기는 후대에 와서 덧붙여지고 소설화되면서 가능해졌던 것이다.


사무라이 문화라는 것은 사실 중세의 잔인함 그 자체다. 사람을 잘 죽이는 기술로 주군의 눈에 들어 출세하고자하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그러나 후대는 이를 의미화하고 낭만화한다. 그리고 그 낭만과 의미를 다시금 비판한다. 그러면서 어느새, 있었던 역사와 덧붙여진 의미와 그에 대한 반성까지, 거대한 하나의 의미 체계를 이루게 된다. 미화와 낭만화, 비판과 반성 모든 것이 스며있는 만화 배가본드처럼.


자기 완결적 체계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우주와도 같은 의미를 입힐 수 있게 된다. 섬나라 일본은 섬 안에서 돌고 도는 가운데에 의미체계를 갖춘다. 천하무적이라지만 천하는 그 경계 안에서 같은 뜻을 겨루는 사람들을 뜻할 뿐이다. 일본의 의미체계는 개항과 함께 붕괴하고 재정립된다. 조선 또한 마찬가지. 우리는 붕괴되고 지배받은 후에야 간신히 다시 엉망인 채로 의미의 재정립을 시작해온 경우일 것이다.


내가 최초로 만난 자기 완결적 체계는 삼년차 조직으로 순환 계승되던 대학 풍물패 동아리였다. 1년차, 2년차, 3년차는 마치 인생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를 은유하듯 돌아갔으며 악기 실력은 그대로 무공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 각종 세미나와 전수, 그리고 공연들, 필요한 공부들. 돌이켜보면 2년 반 남짓한 시간일 뿐인데, 그 시간과 같이 했던 사람들에 대해 나는 신화적인 묘사도 할 수 있다. 의미 체계가 완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토리적으로 캐릭터적으로 얼마든지 위대함에, 저열함에, 환희에, 고통에 가 닿게끔 대응이 가능하다. 그곳은 의외로 자기완결적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은 한 발만 밖으로 나오면 쉽게 깨진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그 완결적 체계가 얼마나 어설퍼 보일 것인가. 미화된 악기 실력들은 얼마나 일천했을 것인가. 학생들이 마주쳐야할 졸업과 사회진출이라는 과제 앞에 또 동아리라는 건 얼마나 연약한 의미체계인가. 하지만 그래도 의미 부여는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미에 삶의 의지를 기댄다.


<배가본드>를 통해 다시 생각하는 건, 하나의 완결된 체계 안에서 의미를 깊게 쪼개들어가 우주를 보는 일의 아름다움과 연약함이다. 의미 체계는 더 강한 의미 체계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총 앞의 칼처럼. 제국주의도 그렇고, 나의 동아리도 그렇고, 첫 직장에 대한 나의 의미부여도 그렇다. 아마 모두들 자신의 어떤 전성기를 돌아본다면, 크고 작은 어떤 의미체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돋보이거나 의미 깊었던 순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린 무너질 걸 모르고 의미를 짓는다.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짓는다. 그리고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속절없이 무너뜨린다. 파도가, 타인이, 스스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속절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의미에 기댄다. 그 의미가 무사시처럼 ‘검술의 천하무적’은 아니겠지만, 불쑥 솟곤하는 아집이 그 시점에 적절한 것인지 고민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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