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바스키아는 왜 뇌의 뒷면을 그렸을까. 뇌의 후면이 시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을 알고 그린 것일까.
올초는 크고 작은 일로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머니의 뇌혈관이 터졌기 때문이다.
병원은 기묘하다. 대부분의 인간의 종착지 근처에는 병원 침상이 존재하게 된다.
아니, 병원 침상에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바스키아는 어릴 때 당했던 교통사고로 인해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접근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고통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던 호기심이었을까.
어머니의 기억과 언어가 밀물과 썰물처럼 지워졌다 나타나는 그 모든 의학적 순간에,
‘뇌혈관’이라는 단어는 내게 무척이나 시어(詩語)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교과서에서 읽은 이육사의 ‘유리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의학 용어는 종종 삶을 결정짓는 언어가 된다. 낯선 단어가 생사의 사이에 틈입한다.
뇌혈관, 폐혈관, 심혈관은 지나치게 치명적이어서 오히려 문학적이다.
죽음 앞에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니까.
바스키아는 그의 뇌혈관이 열심히 운반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그에게도 기억과 언어가 밀려왔다 밀려나갔을까. 시야가 열렸다가 닫혔을까.
가슴과 머리에 더운 피가 도는 기간 동안만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ps. 어머니는 다행히 회복 중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