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착각
종종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시간을 내어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술을 먹을 정도의 엄두가 잘 나지는 않는다.
그들이 나와의 만남에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기엔 삶의 우선 순위가 더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내가 그들을 보고싶어하는 만큼 나를 보고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 또한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다 깨어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종종 사람들을 보고 싶어할까.
그 시절의 좋았던 관계의 순간을 공감하며 되새기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그들 역시 나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가 내게 말해주기를 기대해서 그런 것일까.
여기서 함정은, 그들이 나와는 다르게 나에 대해 좋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관계는 다르게 기억될 수도(거의 100퍼센트 다르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
어쩌면 날 싫어하리라 생각한 사람이 나에 대해 좋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나를 좋게 기억하리라 확신했던 사람이 나를 나쁘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그러니 만남은 유예된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던 우리는
이제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관계를 더듬어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오래된 양복을 어색하게 입은 채로
절을 할 뿐이다.
그리고 인생의 단계를 밟아 가는 스스로를 넌지시 되새겨볼 뿐이다.
우리의 그리움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 다른 역할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