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심는 날
- 예기치 못한 또 한 가지.
원래 출산 예정일은 4월 2일이었다. 방송을 내고 6일이나 뒤였다. 첫 출산이었다. 첫 아이는 원래 예정일보다 늦는다고들 했다. 아무 것도 걱정할 게 없었다. 없어야 했다.
3월 22일에서 23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6일차를 마무리하고 아직 하루 반 정도를 더 찍어야 했다. 뒤늦게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좀 무섭다며. 나는 숙소에 누워 전화를 걸었다. 무서울 게 뭐가 있냐고 다독인 후에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현장에서 마저 풀어야 할 숙제들만 떠올랐다. 남은 일정에 대한 격려를 들은 후 전화를 끊고 잠을 청했다. 휴... 아직 찍을 게 너무 많이 남았는데... 후반 작업할 시간이 너무 모자라겠군... 까무룩 잠이 들고 세 시간 후 일어나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야외 촬영이 끝나가는 저녁 시간이었다. 이 촬영을 끝내면 수원 세트로 들어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게 된다. 새벽 여섯 시까지 완료해야 촬영 일수에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지연되고 넘어온 씬이 많아 아무래도 하루가 더 필요해보였다. 그렇다고 하루를 더 찍으면 제작비를 넘칠 확률이 컸다. 하지만 밤을 새다가 제작비 기준을 넘겨버리면 그보다 더 멍청한 짓이 없다.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단막극에서 제작 일수 사수는 엄중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스케줄을 진행하느니, 비교적 알뜰하게 제작 살림을 꾸렸기 때문에 하루를 더 찍어도 될 것 같기도 했다. 헛갈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장모님께 전화가 왔다. 지난 새벽에 진통이 있어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뭐?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빨리? 아뿔싸, 아내가 괜히 어제 그런 문자를 남긴 게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촬영에 집중을 못할까봐 말을 하지 않은 거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다. 순간 ‘내가 출산을 놓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모님이 전화하신 이유는 출산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곧 의사가 전화를 할 거란다. 진통을 12시간 넘게 했으나 자연분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확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수원 세트 진입 후,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제왕절개 수술로 인해 있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후, ‘그럴 확률은 낮으니 너무 걱정 말고 동의하시라’라는 말에 ‘알았다’는 대답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아내와도 통화했다. 절대 오지 말고 촬영에 집중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같은 PD라 제작 상황에서 책임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예전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PD가 썼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얼핏 스쳤다. 드라마PD의 생활이 고달프다는 글이었는데, 그 예로 출산 때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들며 아내의 원망 어린 얼굴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예전에 이 글 이야기를 아내와 하면서 ‘뭐 그렇게까지 불운하게 스케줄이 안 맞을 상황은 없지 않을까’라고 웃으며 말하던 생각이 났다. 아이고 입이 방정이지.
막상 세트에 들어가 마감 확인하고 촬영을 진행하다보니, 남은 상황이 정확히 보였다. 밤새고 내일 새벽 여섯 시는커녕 정오까지 밀어붙인다 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타임오버다. 오늘 자정까지 찍고 스태프들을 재운 후, 내일 아침 일곱 시에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열 시 반 즈음, 아들의 탄생 문자를 받았다. 나는 자정까지 촬영을 마친 후, 병원으로 향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보호자 입회 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생아 실로 가게 되고, 산모는 봉합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기게 된다. 내가 병원에 도착한 시점은 아직 산모가 회복실에서 나오기 전이었다. 나는 폐인의 몰골로 장모님을 뵙고 안부를 물었다. 진통만 17시간 정도를 하다가 수술을 했으니, 모든 산모가 피하고 싶어 하는 코스를 밟은 셈이었다.
파김치가 된 표정으로 아내가 회복실에서 나왔다. 그 순간만이라도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벽에 아내를 입원실로 옮기고 조용조용 필요한 물품들을 장모님과 함께 정리했다. 간호사는 기억하지 못할 주의사항을 올 때마다 쏟아냈다. 간호사는 우리가 남편과 친정 어머니임을 확인한 후, 아내의 수술 부위를 보여주었다.
피 묻은 거즈, 긴 절개 부위.
왈칵, 그제 서야 아내가 어떤 시간을 홀로 겪어낸 것인지 실감이 났다. 산모와 아이가 무사히 그 시간을 이겨냈음에, 종교가 없는 나는 무작위의 신에게 감사드렸다. 신생아 실로 가면 유리벽을 통해 아이를 보여준다고 했다. 커튼이 열리고 웬 생명체를 안은 간호사가 나타났다. 눈을 못 뜨고, 있는 대로 불쌍한 표정을 가득 지은 쪼글쪼글한 아이가 힘겨운 잠에 취한 채 거기 있었다. 저게 저 아이의 삶의 시작이구나. 나의 시작도 저러했겠구나. 내가 아빠라니. 네가 나의 아들이라니. 휘몰아치는 감동이나 눈물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가만히 가만히 깨달음이 다가올 뿐이었다.
아기를 안고 선 간호사에게 괜히 미안해 30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촬영을 시작해야할 시점이었다. 지금 돌아가면 방송 다음 날이나 돼야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있다. 편집과 후반 작업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4일 후면 방송. 그 후로는 언제 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충 잠시 쪽 잠 정도 잤을까.
나는 다시 짐을 챙겨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렇게 흔들리는 편성 시점 속에서도 결국 이 이야기를 이 시점에 하고 싶어했는지를 깨달았다. 아버지가 되기 전의 관점으로 나의 청춘물을 남겨 놓고 싶었던 거다. 청춘의 온갖 못남을 보듬고 토닥여주는 이야기는 왠지 내가 아빠가 되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날이 진정 내 생의 한 시절이 끝나고 다음 시절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흘간의 유예 기간을 가지러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