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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제작기 2

<액자가 된 소녀>의 기획

by 행복한 이민자


KBS 드라마 스페셜 <액자가 된 소녀>
2014년 11월 9일 24:00 방송, 70분 물

(실 러닝 타임 69분 31초)

** 기획에 이르기까지

“할아버지, 나 어떻게 된 거야?”
- 타이틀 시퀀스, 세영의 질문

방송이 나간 후 on/off line을 통틀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결국 세영이는 어떻게 된 거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가장 큰 질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단막을 보고 나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건 이 이야기의 씨앗을 마음에 뿌린 날부터 내가 붙들고 있던 질문이었다.

1. 영정 사진으로 돌아온 아이들

이 이야기는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믿기지 않는 죽음들과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참극을 어쩌면 좋은가, 저들은 왜 저렇게 죽어갔어야 했나, 이것이 국가인가. TV는 멍청함과 잔혹함, 비겁함과 참극을 생중계했다. 매일의 일상이 스너프 필름이었다. 경악과 공포, 슬픔을 넘어 분노와 환멸의 시간. 그에 대해 방송국이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이 있었다.

2014년 5월 8일. 세월호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보도국장의 발언이 기사화된 후, 유족들이 자녀들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방송국 본관 앞으로 올라왔다. 어버이날, 모든 시청자에게 개방한다는 시청자 광장은 폐쇄되었다. 세월호 유족들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야외에 자녀들의 영정 사진을 안고 주저앉아 책임자가 나와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른바 책임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기다리다 청와대로 이동했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주저 앉혀졌다. 어두운 밤이었다. 교복 입은 자녀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유족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땅 끝까지 꺼져버리는 기분이었다.

당시 한 독립 언론이 웹으로 생중계했던 그 날 밤 유족분들의 대화.

"그래도 우리들은 행복한 겁니다. 팽목항에서 가슴 찢어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조금만 참읍시다!"

"네!"

죽어간 사람들은 왜 죽어갔어야 했나. 이 무능과 음험한 권력과 언론의 담합에 대하여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가. 무슨 질문을, 무슨 대답을, 그들은, 우리는, 나는, 나는 어디에.

이 방송국은 총파업에 돌입했고 사장은 해임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산 분향소를 찾았다. 그 많은 영정 사진들. 모두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현실이 현실같지 않아 시선을 떨구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눈부시게 밝은 미소를 띄고 너무나 생명력이 넘치는 소녀의 얼굴이 있었다. 한세영 양. 세영, 세영아.

2, 말하는 영정 사진

기억 속에 남아있던 다른 유족의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건. 학교 축제 뒤풀이 중이던 55명의 중고생이 죽은 사건이었다. 건물은 안전 기준 미달에 내부 수리로 비상구가 막혀있는 상태였는데 뇌물로 인한 무허가 영업 중이었다. 피신하려던 아이들을 돈내고 가라며 주인이 문을 닫아버려 아이들은 질식해 죽었다.

그 때 학생들을 매도하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게 왜 중고생들이 호프집에 드나드냐는 질타. 거기에 대한 사망자 학생 아버지의 라디오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날은 축제 뒤풀이인 특수 상황이었고 그 정도 수의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는 지역 환경이라고. 이 아이들은 결코 비행 청소년조차 아니고, 사건의 초점은 중고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뇌물로 인한 무허가 영업과 호프집 주인의 만행이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묻는 질문에 그제서야 아버지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사실 자신은 이렇게 차분히 인터뷰를 할 수 있을 법한 성격이 아니라고. 그런데 우리 아들은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착해서, 자신이 욱해서 상황을 그르치려고 할 때마다 자신에게 차분하게 '아버지, 진정하세요, 아버지, 다시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해주는 아이였다고. 지금도 아들의 사진이 눈 앞에서 '아버지, 당황하지 않고 참 잘 하셨어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아들의 사진이 없었다면 이 인터뷰를 해내지도 못했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았다. 억울한 영정사진. 눈부신 미소로 교복을 입은 채로 영문도 모르고, 혹은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 가족의 오열과 대답해주지 않는 국가와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