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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Oct 06. 2017

흉터와 바느질

응급실과 수면마취

 순식간이었다. 손 닿는 거리에 어른 둘이 있었다. 아이는 발로 식탁을 밀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꽝.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 오른쪽 눈두덩이. 눈과 눈썹사이. 복싱 선수들이 늘 피흘리곤 하는 그 곳에서 피가 솟구쳤다. 지혈도 잘 안 된다. 어른들도 일제히 당황. 지혈하러 누른 휴지에 계속 피가 흠뻑 묻어나면 차분하려다가도 정신이 없어진다. 안 좋은 일들은 왠지 나한테 안 일어날 것 같고, 남의 일만 같다. 그러다가 불현듯 너무나 당연하게 갑자기 나의 일이 된다.


 몸부림치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상처 부위를 누르니 약간은 지혈이 됐다. 다행히 상처에 붙일만한 알콜솜과 반창고가 있었다. 사실 난 꽝 소리에 잠이 깬 터라 걱정하고 달래는 것만으로 정신 없었고, 아침 먹이던 장모님과 아내가 분주히 응급처치를 했다. 이 다음이 문제다. 이대로 있나? 병원에 가나? 간다면 어디로?


 급히 검색을 한다. 다친 아이 꿰멨다는 수기가 여기저기 올라와 있다. 성형외과에서 시술받으라는 당부들도 있다. 그럼 이 아이를 데리고 바로 성형외과로 가야 하나? 이 상황과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수 블로그가 기록한대로, 어째야 할지 모를 땐 그저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응급실은 늘 조금 주저된다. 일단 나의 일상 스케줄을 모두 멈춰세울 것을 각오해야 한다. 퇴원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의료진이 다들 지쳐있고 바쁜 가운데, 나나 내 가족은 수많은 환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위중한 사람이 워낙 많으니,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상이나 병증을 의료진들이 섬세하고 사려깊게 봐 줄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처치할 곳, 또 각종 의료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 역시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믿을 수밖에.


 대기 시간은 길었다. 아이는 풀 죽은 표정으로 울다 말다를 계속하다 한참 후에 잠들었다. 찢어진 곳을 다섯 바늘 정도 꿰매야 한다고 했다. 아기 새 살에 다섯 바늘이나 바느질을 해야 한다니. 그러려면 수면 마취를 해야한단다. 수면 마취를 하려면 마취 전 금식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단다. 그래서 대기 시간은 기본 네 시간 이상이 됐다. 그 와중에 넣으라는 안약도 넣었다.


 수면 마취. 아이의 눈빛이 두려운듯 나른해지며 몸에 힘이 축 빠졌다. 안아 올리니 고개가 힘없이 떨어진다. 품에서 버둥거릴 때와는 또 다른, 품에 안겨 잘 때와도 또 다른, 작은 몸의 무게가 느껴진다. 생명이 드나드는 경계에 있는 기분이다. 정신이 잠시 멈춘 작은 몸뚱이.


 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러 CT를 찍고, 아이는 수술을 받았다. 블로그에서 본 대로 성형외과 선생님한테 수술 받을 수 있느냐고 조심스레 문의했지만 눈 주변이라 안과 의사가 집도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 흉터가 남지 않기를 바랄 밖에.


 며칠 후, 실밥을 풀었다. 워낙 아기라 갈수록 옅어진다고는 했지만, 지금 흉터가 크게 보인다. 아쉽다.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다. 항상 더 나쁜 상황은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더 좋은 상황일수는 없을까 궁리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기도 하다.

 

 장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동네 성형외과를 들러 연고를 새로 받아오셨다.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흉터가 없던 아이의 사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자라는 아이니, 몇 개월이 흐르면서 많이 흐려진다고들 한다. 그렇기를.


 굳이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나 또한 블로그 검색으로 대처방안과 위안을 구했기 때문이다. 초여름에 써놓고 잊고 있었던 글을 늦게나마 올린다. 흉은 조금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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