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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서사.

라라랜드를 다시 보다.

by 행복한 이민자

라라랜드를 다시 보고 깨달았다.

이건 삶의 끊어진 서사에 대한 이야기였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의 형태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경험과 선택들은

빠르게 잊혀져간다.

같은 일을 두고 타인과 나의 기억이 다르게 저장되었다면 그 때문이다.

그 일이 각자의 삶의 서사에서 점하는 중요성과 위치가 달랐기에.


삶의 서사에서 편집되는 부분들은 실제로 크게 의미를 둘만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아니면 여행같은, 예외적 서사거나.

그런데 삶의 서사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경험이 있다면

그건 연애일 것이다.

연애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깊게 관여한 경험이 드물지만

지난 연애의 서사는 잊어야 다음 연애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결혼에 이르러서 드디어 하나의 연애 서사만이 과거와 미래를 통일할만한 공증을 받는다.

그렇게 연애의 서사는 끊어지고 편집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끊어낸 이야기가 다시 살아돌아온다면,

그리고 그 서사가 내 삶에서 선택받아 흐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존재 가능성이 있었던 사라져버린 우주에 대해 그려본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를 보며 지었던 눈물 어린 미소가 떠오를 도리밖에 없다.


연애라는 경험이 원초적이기에 끊어진 서사의 대표적 예시가 되긴하겠으나

비단 연애만 그럴까.


얼마 전,

10년을 머물다 떠나온 공동체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나니

내가 닫고 나와버린 관계의 우주가

술기운과 함께 내 몸을 휘감았다가

다시 사라졌다.


같이 했던 시간들,

같이 하려했으나 할 수 없게된 시간들,

공동체의 서사가 연결되리라 믿고 쌓아왔던 희로애락들,

그러나 나의 끊긴, 아니, 끊어 버린 서사들이

나를 덮쳤다가 빠져 나갔다.


가끔 한 번의 연주로 끊어진 서사에 애정의 념을 보내게 된다면

그 연주는 어떤 모습일까.


타인으로부터, 과거의 공동체로부터, 어쩌면 나로부터도 빠르게 잊혀져갈 서사.

그러나 지금의 나를 만든 그 오랜 서사에 대해

이제는 미소를. 미소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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