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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Mar 07. 2018

기성 세대 문턱의 한국 남성.

준거집단

인간은 준거집단으로부터 멀리 못 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를 떠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다르다고, 혼자라고, 그래서 외롭다고 생각해도

나를 무리의 좌표 어딘가에 위치시키며 최소한의 소속감과 안도감을 가진다.

실체를 지닌, 혹은 상상의 무리 안의 도덕 어딘가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주어진 무리와 준거집단도 있다.

가족, 국적, 성별, 세대 같은 것들.

내가 속하고자 노력하여 얻은 준거집단도 있다. 전공, 직업 같은 것들.

하지만 우리는 속하고자 하는 집단에 대해 잘 모른 채로 결정하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적극적으로, 혹은 방어적으로라도, 변해간다.


그래, 인간은 준거집단으로부터 멀리 못 간다. 행동의 이유를 준거집단 속에서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할 말이 늘 넘친다. 서로 부딪친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한 판단의 준거집단은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에 맞는 준거집단을 찾아 선택하기도 한다.


스스로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욕망과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준거집단을 찾으면 안 된다.

준거집단은 인간의 도덕성을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되고자 하는 실제의, 혹은 상상의 무리를 열심히 찾아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의 삶을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신이 속한 무리의 도덕성을 세운다.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자신의 준거집단을 집요하게 발굴하고 좁혀갈 것이다.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무리의 표준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 시간은 타락과 배신으로 되돌아올수도, 성숙과 존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많은 순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인간은 준거집단으로부터 멀리 가지 못한다.

그러나 준거집단을 넓히고 마음에 품는 일은 본인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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