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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Apr 09. 2018

오순택 선생님의 추도식

Rest In Peace

오순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미국에서 돌아가셨기에, 한국에선 제자들을 중심으로 추도식을 치렀다.
4월 7일 토요일, 오늘 아침이었다.

추도식은 연극원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입구엔 한 개의 조화가 서 있고 두 개의 액자가 놓여있었다.
강의실에선 이종무 선배, 성기웅 선배를 비롯하여 제자분들이 영상 장비를 체크하고 있었다.
옆 강의실에선 차와 다과를 배분하고 있었다.
마치 특강을 준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경우, 인연이 짧거나 개인적인 경우가 많고,
더욱이 지금은 연극인이 아니기에 낯선 얼굴이 더 많아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양세윤 배우, 이희준 배우, 유은지 배우, 이영석 선배, 이두성 선생님…

2014년 가을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때 선생님은 나를 안아 주시며 ‘니가 힘들겠구나…’라고 토닥여주셨다.
부고를 듣기 전에 다시 찾아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다.
그래도 어쩌면 기회가 닿아, 한 번은 뵐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삶도 극도, 마법같은 것이니까.

강의실 화면에 선생님의 사진이 올랐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제자분들이 선생님과의 토막 기억을 이야기했다.
가장 최근까지 선생님을 만나뵌 성기웅 선배가
슬라이드 쇼로 발표하듯 선생님의 마지막 행적과
사진들을 공유해주었다.
미국 가시기 직전에 녹음된 선생님의 목소리도 짧게 들을 수 있었다.
제자들에겐 낯선, 쇠약해보이는 최근의 사진이 뜨자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선생님의 약력에 대한 리사 타일러 르노 선생의 기고문을 이종무 선배가 대신 읽었다.
‘… Soon-tek Oh, a man of the ‘grand gesture’, who understand ‘living large’.

조용한 눈물이 촉촉이 강의실을 적셨다.

다 같이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이 노래, 얼마만인지.
목소리를 내니 마음이 더욱 떨렸다.
모두에게 선생님의 지성과 신념, 배려와 환대가 생생하게 떠올랐으리라.

마지막 무대의 분장실에서의 미소가 화면에 떴다. 모두가 사랑했던 그 미소.
제자들의 선생님을 향한 사랑은 가히 컬트적인 것이었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제자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깊고 진실한 순간을 공유하셨기에.
가르침대로, ‘현존’하셨기에.

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의금을 내고, 분향하고 절을 하고, 육개장과 편육을 먹으며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운전을 해야 한다며 술을 사양하고 돌아오는 일에 익숙해져있다보니,
처음 경험하는 이런 추도식이 훨씬 선생님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의 슬픔과 웃음 속에 선생님의 영혼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오순택의 연기 수업, 칼은 쥔 노배우’를 다시 읽었다.
선생님은 거기에 그대로 계셨다. 또 많은 것을 잊고 살았구나.

Rest In Peace, 스승이자 배우, 오순택 선생님.
1933. 6. 29. - 2018.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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