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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May 14. 2018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

사랑과 파멸.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 (스포)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국과 일본의 대중 문화가 서로 깊게 영향을 끼쳐온 시간이 이 영화에 녹아들었다고  느꼈다. 20세기의 대중 문화를 탐닉하며 자라난 사람들이 지금 제작의 중심에 있으니 당연한 일일테다. 미국 문화는 냉전 승리를 향해가는 서사가 있어서 그런지, 긍정적인 기운과 함께 단순화된 선악 도식같은 것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다. 일본 문화는 가해자 정서와 피해자 정서가 뒤섞여서 그런지, 죽음과 비장함에 대한 의식, 그리고 선악 구도의 뒤섞임 같은 걸 잘 표현한다고 느꼈다. 영화를 앞세운 미국과 만화를 앞세운 일본은 압도적인 대중문화 강국이었다. 그 지배력이 쉽게 드러나는 건 영화 장르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충격적으로 사로잡는 건 만화다. 일본 TV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미국 영화 못지 않게 대중 문화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에서 연상되는 애니메이션은 다음 세 편이다.


‘드래곤 볼’


 드래곤 볼 7개를 모아 소원을 빈다는 설정과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아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설정 상의 유사성은 물론이고, Z전사들이 모여 ‘베지터’, 혹은 ’프리더’, 혹은 ‘셀’에 대항한다는 서사도 비슷하다. 전투 장면의 느낌도 그렇고. 프리더는 행성을 파괴하고 다니는 정복자였고 나메크성에서 이뤄진 전투는 타이탄에서 벌어진 전투 느낌과도 비슷하다. 초반 뉴욕과 스코틀랜드 시퀀스를 지나 우주선과 타이탄 시퀀스, 그리고 지구의 최종전 시퀀스에 이르기까지의 느낌은 마치 ‘베지터 전’을 지나 ‘프리더 전’을 치르고 ‘셀 전’에 임하는 상황을 단박에 감상하는 느낌이다. 프리더의 ‘제 전투력은 53만입니다’의 절망감, 셀 완전체 앞의 절망감을 맛 볼 수 있다.


 ‘세인트 세이야’


 압도적인 적 앞에 팀으로 붙어서 나가떨어지는 서사에는 또 세인트 세이야 만한 게 없지. 이것도 처음엔 흩어진 황금성의를 하나 하나 되찾는 것으로 시작하는 데에다, 청동 성투사 하나하나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 마블 히어로들과 흡사하다. 각자의 성좌에 얽힌 기술과 스토리들이 하나로 엮여 팀 대결, 혹은 1:1 대결로 흘러가는 모습도 비슷하고, 마블의 히어로 수트에 해당하는 성투사 갑옷(크로스)도 있다. 황금 성투사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청동 성투사들의 절망감, 근성의 역공에서 오는 쾌감. 이 영화와 공유하는 유전자다.


‘에반게리온’


 히어로들의 활약 서사라는 점에서 드래곤 볼과 세인트 세이야가 떠올랐다면, 전 인류의 운명을 놓고 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 드라마로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에반게리온이 생각난다. 어벤져스의 심리보다는 타노스의 심리에 들어가긴 하지만. 운명의 최종장에 다가가는 장엄함과 개인의 유약함, 마음 속의 지옥도 같은 것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잃기를 선택하고 울부짖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에반게리온을 연상시킨다.


내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파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지만 잃어야만 했던, 혹은 제 손으로 보내야 했던. 그리고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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