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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Aug 27. 2018

장필순 8집 soony eight <소길화> 콘서트

외로움과 그리움

장필순 8집 <소길화> 발매 기념 콘서트.

공연이 종교적 체험을 대신할 때가 있다. 좋은 연극이나 좋은 콘서트는 몰입과 자성, 감정적 고양을 준다. 어떤 절대자를 믿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믿음을 공유한다.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 근원적 고독.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사람은 그저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안다는 믿음. 그 걸 환기하며 깨닫고 반성하거나 위로받는 체험이, 종교와 공연이 흡사한 점이다. 하긴 서양 연극의 기원은 예배극이라고 하고, 공연의 제의적 속성을 교과서에서 공부하기도 하니,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오랜만의 종교적 체험이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음미한 시간.


늘 외롭고 늘 그립지만, 정작 잘 외롭고 잘 그리워하는 일은 어렵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외로움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로움을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도 그렇다. 우리는 그리움을 타인과 관계를 맺는 대신, 감상적 위안의 일환으로 사용하곤 한다. 자기다워지기 위해서는 외로움이 필요하고,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선 그리운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원리를 반대로 써먹으며 살곤 한다. 자기다워질 수 있는 시간엔 타인이 그립다며 칭얼거리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순간엔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칭얼대는 것이다. 끊임 없는 도망이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로부터, 관계의 진실과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일로부터.


노래들은 명상 음악 같았다. 조동진 님의 내외 분을 잃은 그리움과, 진득하니 자신의 소리를 추구해온 시간의 단단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노래들. 잘 외롭고 싶다, 잘 그리워하고 싶다는 마음이 몽실몽실 차오르던 시간. 외로움과 그리움은 결핍의 이름이 아니라 충만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끊임없는 순환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통해 자신을 알고, 그리움을 통해 타인을 알고. 결핍을 인지하며 충만을 추구하는 여행.


난 도시를 떠난 삶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도시를 좋아한다. 끊임 없이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용광로. 익명성의 고독같은 것들. 그래서 제주를 기반으로 삼고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전달하는 단단함은 반갑고 놀라웠다. 늘 취한 듯이 외롭지도 않고 연결되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로 비틀거리던 감각으로부터, 잘 정돈된 외로움과 정중한 그리움이 손을 뻗쳐왔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잘 외롭고, 잘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참 잘 살고 있는 것일텐데. 외롭고 싶지도 않고, 타인과 관계맺는 고통도 싫어 부유하는 삶이 아닌, 최선을 다해 외롭고 최선을 다해 그리워하는 삶.


전 이토록 외로웠어요. 그리고 열심히 그리워했어요. 제 외로움과 그리움의 기록입니다, 하고 내민 노래에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도요. 외롭고 그리웠어요. 하지만 난 대부분 도망쳤던 것 같아요. 그 두 가지 마음으로부터. 고통 비슷한 것인줄 알았거든요. 어쩌면 외로움도 그리움도 다 귀찮았거든요. 그런데, 외로움과 그리움을 무던하게 정면으로 헤쳐나간 노래를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잘 외롭고, 잘 그리워하고 싶어졌어요.

8.26. (일) 홍대 벨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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