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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Aug 06. 2018

잘 가요 홍식이 형.

서홍식 드라마 음향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홍식이 형이 떠난 지 열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믿겨지지 않고, 매일 매시간 틈틈이 생각이 난다.

우리 나이로 마흔 아홉. 재발한 암.


형은 뼈가 굵고 힘이 좋은 장사 체형이었다. 엄청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면 무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 여리고 섬세하고 얘기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형은 결혼이 늦었다. 연애를 시작할 때 여자 친구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며 자랑했었다.

늦둥이 두 아이를 낳은 후에도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기 같지 않아 예쁘다며.

아니, 아이들은 형을 닮았고 예뻤다.


그 사진 속 사람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눈물에 젖어 서 계셨다.

홍식이 형의 영정 사진은 웨딩 사진 중의 하나로 보였다.


드라마 음향효과 감독, 사운드 디자이너.


형의 직업이다. 이 직업의 특수성은 ‘최후의 스태프’라는 데에 있다.

편집이 끝나고, 특수영상, 색보정, 음악, 음향으로 나뉘어 작업이 들어가면

종합 편집을 하는 현장에서 최종적으로 음향이 조율, 추가된다. (그랬었다.)

그말인즉슨, 늘 방송 시간이라는 최종 마감에 몰려 초치기로 작업 해야 하는 직업군이라는 뜻이다.

음향효과는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즉각적이라 방송시간이 다 됐다고 해서 안전 제일로 작업할 수 없는,

퀄리티와 직결된 분야다. 연출의 가이드 없이 혼자서 알아서 작업해야 하는 작업량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테입이 쪼개져 주조로 달려가는 숱한 ‘생방’의 현장에 늘 형이 있었다.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형은 드라마 음향효과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예고편에는 효과가 쓰일 데도 많다. 그래서 늘 형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예고편에 들어간 음향을 듣고 물어보면서 음향의 쓰임새를 배웠다.

형이 작업하지 않는 일일극을 할 때는, 시간적 문제 때문에 직접 주워 모은 효과를 넣어 빨리 마감해야 할 때가 많았다.

지나가다 부족한 효과음을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몇 번 도와주거나 의견을 주다가,

문득 비밀이라며 꽤 많은 양의 음향 파일을 내 외장하드에 옮겨 주었다.

경력이 짧은 내 생각에도 ‘어? 이거 영업 밑천 아닌가?’ 싶을 정도의 통 큰 도움이었다.

하지만 작업을 해보면서 알게 됐다. 좋은 사운드 디자인은 파일 좀 챙겨놓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어느 순간에 어울리는 어떤 음향을 찾고, 배합하고 효과를 먹여서 좋은 결과물을 내는 일은

다년 간의 작업으로 귀에 진물이 나도록 수천 수만의 음향을 듣고 또 들어야 생기는 감각이고 속도였다.


그래서 더욱 형에게 많은 작업을 의뢰했고 그 작업의 순간 순간에 귀기울였다.

처음엔 온전히 배웠는데 곧 나도 고집이 생겨서 밀고 당기기도 엄청 했다.

이게 낫다, 아니다 저게 낫다 하며.

사실 형은 말을 그냥 들어주고 넘기면 그만이었을텐데.


형은 당당하게 일하고자 했다.

‘최후의 스태프’였기에 언제나 시간이 모자랐다. 형이 늘 주장하는 것은 최소 작업 시간을 확보해 달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미리 준다고 꼭 미리 작업이 되는 것만도 아니어서, 가끔 투닥거림이 생겼다.

형은 표현이 거친 편이어서 형과 투닥이다보면 나도 어깃장도 놓고 서운해 하며 목소리도 높였다.

하지만 종편을 끝내는 개운함에 그런 감정들은 날아가곤 했다. 형에겐 늘 뭐가 고맙고 뭐가 서운한지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형 또한 정확하게 듣고, 뭐가 서운하고 뭐가 어려운지 정확하게 얘기했다. 형은 나를 잘 알았다. 나도, 그러고자 했다.


‘넌 예고 목숨 걸고 만들었잖아. 하긴, 종선 씨만 그런 건 아니지만’

갓 연출을 시작했을 때 예정에 없이 합석하게 된 술 자리에서 형이 문득 던진 말이었다.

형의 과장법이긴 했지만, 형은 조연출들의 어떤 간절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아방하네.’ ‘네?’ ‘아방가르드 하다고’

K 입사 초반에, ‘공영방송이라면 프로그램이 좀 전위적인 측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나 혼자 ‘아방가르드’라는 모토를 세운 적이 있다. 곧 현실과 동떨어진 표현이란 걸 깨닫고 마음 속에서도 닫아 놓았었는데, 내 단막 데뷔작의 어느 부분을 보며(같이 작업하며) 형이 혼잣말처럼 던진 말이었다. 나조차 잊고 있었는데, 전으로도 후로도 내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형이 유일했다.


섹드립이 있었던 장면에서 ‘초승달이 바나나로 변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주는 바람에 그 부분을 시간을 늘려 CG까지 수정하느라 일이 많아지자 좋아하기도 후회하기도 애매한 표정을 짓던 순간, 등장인물의 진땀이 송글송글 솟는 장면에선 머리카락이 돋는다는 듯 새싹이 돋는 음향을 넣고 재밌지? 신선하지? 하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별관 오층 옥상에서 농구 얘길 하며, 자기가 덩치는 있는데 손이 두껍고 작아서 농구에 불리했다며, 그렇지만 의외로 스틸은 잘했다며, 스퍼스의 ‘쌔껌정’ 유니폼이 ‘쎄보여서’ 좋아했다던 말들도 생각난다.


내가 직접 형에게 의뢰했던 작업 중에 형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게 하나도 없다.

숱한 예고와 타이틀, 제작발표회 영상 믹싱, 그리고 단막들.


형과 따로 술잔을 기울이며 사는 얘기를 한 적도 없다.

일하며 오가다, 같이 밤을 새며 나눴던 몇 가지 얘기들 뿐.


이직한 후, 형은 내게 네 번의 안부전화를 했다. 내가 먼저 하지 않았다. 반갑고 고맙게 받았다. 근황 얘기하다 끊었다. 만날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바닥에 있으면 근시일 내에 지겹게 만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돌이켜 계산해 보니, 그 네 번 중 한 번은 형이 많이 아팠던 시기였던 것 같다.


왠지 얼마 후, 같이 작업하자고 전화하며 근황을 나누면

‘헤헤 그 때 정말 죽을 뻔 했지!!’ 하고 짓궂고 시원하게 웃는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형만이 성실하게 읽어주었던 나의 디테일들이 있었다. 버튼만 누르면 기억에서 바로 튀어나오는 음향 ‘기까끼’들에 대해, 소리의 참신함과 진부함들에 대해 밤새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도 성실하게 형의 디테일을 읽으려고 했다. 난 그런 사람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형이 수많은 사람들과 맺었던 각별하고 섬세한 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릴 없이 쉴 새 없이 최선을 다 했던 형의 순간들과 결과들을,

나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고마워할 거에요.


잘 가요 홍식이 형.


그리고 형 가족분들이

형을 그리워하는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서홍식 음향 감독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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